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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大幹, 鷄龍正脈'에 해당되는 글 72건

  1. 2008/06/13 시간의학
  2. 2008/06/05 지축과 역학
  3. 2008/05/30 계룡정맥 국사봉 탐방
  4. 2008/05/29 지리산 고운동 운적사 (1)
  5. 2008/05/27 백두대간 오대산 9-5
  6. 2008/05/27 백두대간 오대산 9-4
  7. 2008/05/27 백두대간 오대산 9-3
  8. 2008/05/27 백두대간 오대산 9-2
  9. 2008/05/27 백두대간 오대산 9-1
  10. 2008/05/27 백두대간 태백산 8-4

[출처:http://jeejee.name/entry/시간의학-소개-서언]

시간의학 소개-서언


서언(안초의 학문관)

A. 시간의학의 개념
 1. 시간의학의 당위성
 2. 세계적 동향
 3. 시간의학의 역사
 4. 운기학의 부활

B. 시간의학의 특징
 1.(신명) 생명의 상수화
 2.(음양) 태과불급의 객관화
 3.(5행) 인체의 설계도(장부)
 4.(3극) 질병의 변화추명(경락)

결언(시간의학이 나아갈 길)


서언

안녕하십니까.
대한경락진단학회에서 훌륭하신 한의사 분들에게 시간의학을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느라 불철주야(?) 고생하신 호적수 김정겸 부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먼저 안초 개인의 소개를 올려야 마땅합니다만, 별로 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 저의 학문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저는 동양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고전의 저자와 안초 오로지 이런 만남으로만 공부했지, 주석이나 근래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즉 정역은 일부와 안초, 운기학은 황제, 기백, 구유구와 안초, 주역은 문왕, 주공, 공자와 안초 이렇게만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포기하였다가 다음에 다시 도전하고 안 되면 포기하였다가 다시 도전하는 방법으로 공부했지, 결코 주석이나 참고문헌 등 누구의 도움으로 위 고전을 읽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공부를 했는가 하면, 지금의 학문으로는 자칫 잘못하면 진리를 찾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학문은 서양학의 영향으로 귀납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임상으로 이론을 만들고 수정하기 때문에 각자의 주관에 따라 갈기갈기 흩어지고 있으며 또 그러다보니 각자의 견해가 달라 논쟁이 일어나기 다반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자 상상하는 모습을 가지고 진리인 양 싸우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동양학은 귀납이 아닌 연역적 학문입니다. 즉 하나의 원리에 의해 만 가지를 미루어 아는 학문이지, 결코 몇 가지 사실에 의해 결론을 취합하는 귀납적(통계학)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 출발시점인 하나의 원리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음양과 3극5행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분명 위 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원리는 등한시 하고 귀납적인 사실을 취합하는데 더 치중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만약 정말 귀납적으로 하고자 한다면 굳이 위 음양과 3극5행이 존재해야 할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歸一百慮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 "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천하가 귀숙은 같아도 갈 길이 달라서 하나로 일치하고 백가지로 갈라지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리오)라고 원리는 하나로 귀숙하지만, 하나의 원리는 다시 백가지로 갈라진다.

따라서 저는 위 하나의 원리를 찾기 위해 고전과 사투(?)를 벌려 왔으며, 과학과 동양학이 만나는 쾌감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한동석님이 제시하신 학문의 길이 곧 제 인생이 되어 못난 아빠, 못난 남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미완성이지만 우주(중)원리를 편저(미완성)했고, 위 원리를 전하기 위해 부족하나마 ‘중의원리’ 동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위 우주변화원리를 찾고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생명의 초기조건인 4주(이하 자평학)의 奧義를 알아 우연히 시간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적으로 태동하고 있는 시간의학에 편승하고자 시간의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으며, 부족하나마 이것을 나누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A. 시간의학의 개념

시간의학을 한마디로 소개하면 운기학에서 잃어버린 시간개념의 부활로 우주변화원리+운기학+4주학+한의학이 접목된 학문입니다.


1. 시간의학의 당위성

지금은 과학시대입니다. 그리고 위 과학을 이끌어가는 최고 학문 중 하나가 물리학입니다. 위 물리학이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양자론에 의해 고전과 현대 물리학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위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시간의 도입입니다. 즉 고전 물리학은 공간과 시간이 분리된 관점인데 반하여 현대물리학은 시간(속도)과 공간(운동량)이 합일하게 된 것입니다.

우주는 결코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시공합일하여 존재합니다.

宇宙
우주는 '회남자'에서, "天地四方 曰宇, 古往今來 曰宙"(하늘, 땅, 4방을 宇라고 하며, 과거가 가고 현재가 오는 것을 宙라고 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宇는 공간, 宙는 시간... 즉, 우주는 時空 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의 한의학은 공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분명히 시공합일이라는 우주를 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개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글쎄요. 지금 시간의학의 소개를 계기로 한의학에 시간개념이 다시 부활 된다면 훗날 후학들은 이 시점을 고전과 현대한의학을 구분 짖는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세계적 동향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합일하여 움직이는 만큼, 과학의 각 분야에서 시간개념의 도입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의학 역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Time Medicine, 時間醫學, 시간의학을 검색해 보면 서양의학, 생물학, 생체리듬 등 의외로 세계각지에서 시간의학에 대한 연구가 태동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실례를 소개합니다.
생물학의 시간의학은 “지난(2002년) 10월 12일부터 북경에서 현재 생물의학의 최신 영역인 “시간생물학과 시간의학”을 중점적으로 토론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거행되었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미국의 Illinois대학 세포생물학과 학과장이며 신경잡지의 편집인 Gillett와 심리학과 교수, 미국 과학원 원사, 학습과 메모리잡지의 주요 편집인 Grino교수를 초청하였다... 또 여러 명의 탁월한 성과를 얻은 미국국적 화교교수들을 초청하였다. 그들은 각각 Minnesota대학 약리학과의 학과장이고 약물인 연구 전문가인 나호(羅浩)교수, Minnesota대학 의학원의 정건명(丁健明)교수, Cornell대학의 손중생(孫中生)교수이다....이번 심포지엄은 10월 14일에 결속되는데 전문가들은 “시간생물학과 시간의학”의 최신 연구성과를 두고 광범한 교류를 진행할 것이다.“http://jeejee.com/AsaBoard/asaboard.php?bn=heredity 참조


3. 시간의학의 역사

시간의학은 결코 새로운 학문이 아닙니다. 시간의학은 한의학의 출발점에 있습니다.황제내경에서는 만물(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음양 4시(시간)로 보고 있습니다.

死生之本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4기조신대론에서, "陰陽四時者 萬物之終始也 死生之本也 逆之則災害生 從之則苛疾不起 是謂得道 道者 聖人行之 遇者佩之" (음양4시는 만물의 처음과 끝이며 죽고 사는 本이다. 거스리면 재해가 발생하고, 따르면 가혹한 질병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得道라고 한다. 道는 성인이 행하는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차고 다닐 뿐이다)라고 만물은 음양4시에서 비롯되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론 뿐 아니라 실제 침구법에 있어서도 자오유주법(子午流注法)에 시간의학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제내경 영추에서, “謹候其時, 病可與期, 失時反候者, 百病不治 先知日之寒溫, 月之衰盛, 以候氣之浮沈, 而調之身”(신중히 때를 살피면 병을 시기에 맞추어 치료할 수 있으나, 때를 잃어버리거나 때에 급급하면 어떤 병도 치료하지 못한다. 먼저 해의 차갑고 더움, 달의 차고 기움을 알고, 기의 들뜨고 가라앉음을 살피고 나서 몸을 조절한다)' 라고  일월 때에 맞춰  치료한다.

따라서 시간의학은 낮선 이방인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를 살펴볼 때 실제적인 근원은 한의학의 출발점에 있으므로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운기학의 부활

생명의 초기조건(Initial condition)인 4주(이하 자평학)는 북경의 나비(초기조건)가 미국에서 폭풍우로 몰아친다는 Chaos이론에 의하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그 누구도 시간으로 질병을 바라 볼 수 없다는 근거와 이치는 제시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주만물은 음에서 양이 나오고 양에서 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極則必反)

시간의학의 등장은 한의학과의 접목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이천은 ‘의학입문’에서, “주역을 모르면 의학을 감히 논할 수 없다”라고 하였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시간의학은 주역(易)보다는 황제내경의 운기학(道)을 근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운기학에 충실한 한의학은 시간의학을 직접 치료에 응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곳 경락진단학회는 황제내경 운기학을 경전으로 연구하는 곳입니다.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시발점일 뿐 아니라, 선도학의 시발점이며, 또한 자평학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帝載
경도는 적천수에서,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라고 4주의 근원을 첫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참고 위 적천수는 자평학의 고전임

자평학은 장구한 역사를 통해 질병론을 연구해 왔으며, 여러 한의사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실제로 중국 같은 곳에서는 한의사에 의해 치료에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精神血氣
서대승은 ‘연해자평’에서, “夫疾病者 乃精神血氣之所主 各有感傷 內曰臟腑 外曰肢體 八字干支 五行生剋之義 取傷重者而斷之 五行干支太王不及俱病”(무릇 질병은 정신혈기가 주 요소가 된다. 각각은 감응하고 상함이 있다. 내부를 장부하고 하고 외부를 지체라고 한다. 8자 간지 5행 생극의 뜻으로 병상의 중함을 판단하는데 5행간지가 태왕불급한 것을 병이라고 한다)라고 정신혈기는 질병판단의 요소가 된다. 참고 위 연해자평은 자평학의 경전임

한의학과 자평학은 황제내경을 똑같이 경전으로 하므로 위 두 학문은 원리와 용어가 전혀 일치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인 학문이 누구보다도 황제내경 운기학에 충실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위 학문이 하나로 재구성되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아니 한의학에서는 그동안 이론으로만 다루어 왔던 3회합, 6합 등 상수학을 실제 임상에 적용하여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므로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발생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의학의 소개는 시간개념의 접목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합일 된 운기학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 시간의학의 특징

시간의학은 상수로서 태과불급(음양), 표본중기(3극), 경락변화(5행)으로 질병원인을 바라 볼 수 있게 하므로 진단과 치료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1. 생명의 상수화

Chaos이론에서 우주만물은 초기조건(initial condition/命)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기에 의존해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運)에 의해 움직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평학은 생명의 초기조건(命)인 4주(년월일시)를 60갑자의 상수로 표기하여 움직이는(運) 인생의 변화를 추명하는 학문입니다.

생명을 상수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입장에서 볼 때 매우 소중한 자산이며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수란 象(공간)+數(시간)의 시공합일 된 표현이며, 神이 밝히는(明) 도구입니다.


황제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善言始者 必會於終 善言近者 必知其遠 是則至數極而道不惑 所謂明矣"(처음을 잘 말하면 반드시 끝에 모이고, 가까움을 잘 말하면 반드시 먼 곳을 알게 된다. 數가 極에 이르러서 道에 의혹이 없는 것을 明이라 한다)라고 明을 정명한다.

시간의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數가 있기 때문이며, 數가 있다는 것은 곧 象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數從象
유목은 '역수구은도'에서, "天地之數旣說 則象從而定也"(천지의 수가 이미 설정되면 천지의 상은 여기에 따라 정해진다)라고 數從象을 설명한다.

그리고 위 數는 예측 뿐 아니라, 나아가 과학과 실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게 되게 될 것입니다.  


2. 태과불급의 객관화

한의학에서는 태과불급으로 病의 정도를 판단하고, 자평학은 태과불급(강약)으로 길흉을 판단합니다. 위 태과불급은 평형을 판단하는 權衡(저울질)이라는 동일한 원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한의학과 자평학이 만나야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참고로 위 태과불급은 북두7성의 권성과 옥형이 균형을 유지하는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運政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夫五運之政 猶權衡也. 高者抑之 下者擧之 化者應之 變者復之 此長生化成收藏之理 氣之常也. 失常 則天地四塞矣"(무릇 5운의 다스림은 저울과 같은 것이다. 높으면 抑고 낮으면 擧합니다. 化는 응하고 變은 회복되는데, 이것이 장생화성수장의 理이고 氣의 常입니다. 常을 잃으면 천지사시가 막힙니다)라고 5運의 政은 저울처럼 權衡으로 抑擧한다.

그리고 4주라고 부르지 않고 자평학이라는 이름을 원용하는 이유도 바로 子水의 생명과 위 平衡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子意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以天開於子 子乃水之專位 爲地支之首 五行之元 生於天一 合於北方 遇平則止 遇坎則流 此用子之意也"(하늘을 여는 것은 子이다. 子는 水로서 오로지 位가 있다. 지지의 머리이며 5행의 으뜸으로 하늘의 一을 생하며 합쳐서 북방이 된다. 平을 만남으로 머무르게 되고 坎을 만남으로 흐르게 된다. 이것이 子의 뜻을 用한 것이다)라고 子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平意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又如人世用秤稱物 以平爲準 稍有重輕 則不平焉 人生八字 爲先天之氣 譬則秤也 此用平之意也(또 예컨데 이세상 사람들은 물건을 설명할 때 저울질을 사용한다. 이것은 平에 기준을 두어 초점으로 重輕의 平하지 않음을 잰다. 인생8자의 선천의 氣에 있어서도 비유하여 저울질을 한다. 이것이 平의 뜻을 用한 것이다)라고 平의 의미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한의사 각자의 주관에 의해 판단되던 태과불급을 자평학은 상수에 의해 객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즉 태과불급의 판단은 상수로서 시간의학이 판단하여 객관화하고, 한의사는 이것을 재차 환자에게 진단하시어 치료에만 전념하실 수 있게 됩니다.  


3. 인체의 설계도(장부)

위 하나의 命(병)을 표본중기와 주기,객기로 구분하여 그 변화를 살필 수 있습니다.

命徵
기백은 '황제내경 6원정기대론'에서, "夫六氣之用 各歸不勝 而爲化 故太陰雨化 施于太陽 太陽寒化 施于少陰 少陰熱化 施于陽明 陽明燥化 施于厥陰 厥陰風化 施于太陰 各命其所在以徵之也"(무릇 6기의 用은 각기 勝하지 못하고 歸하여 化합니다. 그러므로 태음은 雨로 化해서 태양에 베풀고, 寒으로 化해서 소음에 베풀고, 소음은 熱로 化하여 양명에 베풀고, 양명은 燥로 化하여 궐음에 베풀고, 궐음은 風으러 化하여 태음에 베풀어 각기 그 있는 곳을 命하여 徵하는 것입니다)라고 命徵을 설명한다.

생명은 지축이 기울어져 있어 생겨나며, 위 지축의 모순에 의해 죽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命에 의해 태어나, 修身에 의해 命이 기울어집니다.

命傾
동무는 ‘동의수세보원’에서, “太少陰陽之臟局長短 陰陽之變化也 天稟之已定 固無可論 天稟之已定之外 又有短長而 不全其天稟者則 人事之修不修而 命之傾也 不可不愼”(태소음양의 장국의 장단은 음양의 변화이다. 천품으로 이미 정해진 것은 고정되어 논할 것이 없다. 천품으로 이미 정해진 것 외에 또 장단이 있어 그 천품을 온전치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즉 사람의 일이 수신과 수신하지 않음으로 命이 기울러지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命의 기우러짐을 삼가 해야 한다.

위 하나의 命의 이치는 폐비간신 네 가지로 구분됩니다.

四臟人
동무는 ‘동의수세보원’에서, “人稟臟理 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 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 太陽人 腎大而脾小者 名曰太陰人”(인품의 장의 이치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같지 않으니,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자를 태양인이라 하고,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자를 태음인이라 하고,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자를 소양인이라 하고,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자를 소음인이라 한다)라고 四臟人을 설명한다.

우리의 인체는 폐비간신을 근본으로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시간의학은 위 4상 체질을 근본으로 천지(1상하), 일월(2좌우), 표리(3내외)로 도식화하여 인체 설계도를 밝혀줍니다.

標本順逆
기백은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是故百病之起, 有生於本者, 有生於標者, 有生於中氣者, 有取本而得者, 有取標而得者, 有取中氣而得者 有取標本而得者 有逆取而得者 有從取而得者 逆正順也 故標與本 用之不殆 明知逆順 正行無間 此之謂也”(그래서 백가지 병의 발생은 본에서 생기고, 표에서 생기고, 중기에서 생긴다. 본을 취해 얻고, 표를 취해 얻고, 중기를 취해 얻고, 표본을 취해 얻는다. 역으로 얻고, 종으로 얻으며, 역이 정순이다. 그러므로 표와 본을 용함이 위태하지 않고 역순을 알아 밝히니 바르게 행하여 막힘이 없음은 이것을 말한다)"라고 표본중기에서 발병하고, 역종역순을 설명한다.


4. 질병의 변화추명(경락)

공간은 복잡하게 보이고, 시간은 단순하게 움직입니다. 생명은 장부로 복잡하게 보이지만, 경락을 통해 단순하게 움직입니다. 병은 상하좌우표리로 복잡하게 나타나지만, 하나의 병이 단순하게 움직입니다.

서양의학은 복잡한 조직을 치료하지만, 동양의학은 단순한 하나의 현상을 치료합니다. 시간의학은 상수학이므로 幹線(경)과 枝線(락)을 象으로 보여주며, 數로서 그 命(病)의 변화를 미루어(推) 알게 합니다.

會同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천원기대론'에서, "故寅午戌歲氣會同 卯未亥歲氣會同 辰申子歲氣會同 巳酉丑歲氣會同 終而復始"(인오술 해의 기가 회동하고, 묘미해 해의 기가 회동하고, 진신자 해의 기가 회동하고, 사유측 해의 기가 회동해서, 마치면 다시 시작한다)라고 지장간의 회동을 설명한다.

運化氣
서대승은 ‘연해자평’에서, “夫五運化氣者 甲己化土 乙庚金 丁壬化木盡成林 丙辛化水分淸濁 戊癸南方火焰侵”(무릇 5운 화기는 갑기화토, 을경금, 정임화목 숲을 이루고, 병신화수 청탁으로 나누어지고, 무계 남방화가 불곳으로 침투한다)라고 5운의 化氣를 설명하고,
또한 “甲己化土 中正之合 辰戌丑未 全曰 稼穡勾陳得位”(갑기화토는 中正之合이고 진술축미의 全은 가색이고 구부려 位를 얻는다)라고 토를 설명하고, 또한 “乙庚化金 仁義之合 巳酉丑 全曰 從革”(을경화금은 仁義之合이고, 사유축의 全은 종혁이다)라고 금을 설명하고, 또한 “戊癸化火 無情之合 得火局曰 炎上”(무계화화는 無情之合이고, 화국은 염상이다)라고 화를 설명하고, 또한 “丙辛化水 得申子辰 水局曰 潤下”(병신화수 신자진 수국은 윤하이다)라고 수를 설명하고, 또한 “丁壬化木 得亥卯未 全曰 曲直仁壽”(정임화목 해묘미의 全은 곡직 인수이다)라고 목을 설명한다.

星辰은 보여지고 안 보여지는 별입니다. 별이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보입니다. 우리 신체 역시 이렇습니다.

서양적 시각입니다.
R. 그랜트 스틴은 '유전자와 인간의 운명'에서, "DAN가 운명을 결정하는가? 만약 DNA가 정말로 운명을 결정한다면 사람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같아야 만 한다. -중략- 세포들의 모양이 다른 것은 유전자가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세포가 분화하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한국유전학회 역/전파과학사 2001.3)

질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각각 별개의 질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病이 보이고 안 보이는 것 즉 경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 보이고 안 보이게 하는 것이 線을 한의학에서는 경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 보이고 안 보이게 하는 門을 開·闔·樞라고 합니다. 시간의학에서는 위 開·闔·樞를 상수로 객관화하여 보여 줄 것입니다.


결언(시간의학의 나아갈 길)

대한경락진단 학회와 저는 많은 부분에서 연구방향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먼저 위 학회와 저는 원리를 중시하고 있으며, 황제내경 운기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위 운기학을 원리로 학회는 영추(공간)를 연구하였고, 저는 자평학(시간)을 연구하였습니다. 하나의 운기학을 각각 공간과 시간에서 연구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 합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각기 다른 곳에서 연구했을망정 그 용어와 원리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토론으로 극복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회와 제가 힘을 합친다면 이것은 운기학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수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현대 한의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딱 들어맞는 인연이 아닐 수 없으며, 이 점에 있어서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일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각자의 임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학문이라면 쉽게 대화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러니까 임상에 의한 귀납법적 학문은 아무리 세를 불려도 결국 자신뿐이며 이것은 후학으로 이루어질수록 다시 또 갈라지게 마련입니다. 주관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운기학을 중심으로 원리에 충실한 연역법적 학문은 같은 류의 학문 뿐 아니라 어떠한 동양학 어떠한 나라의 학문과도 융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의 최고 목표는 예방의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개념이 없다면 진정한 예방의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시간의학은 진정한 예방의학의 길을 열러 줄 것입니다.

治未病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4기조신대론에서, "聖人不治已病治未病 不治已亂治未亂 此之謂也 夫病已成而後藥之 亂已成而後治之 猶渴而穿井 鬪而鑄錐 不亦晩乎"(성인은 이미 병든 것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들기 이전에 치료하고, 이미 어지러운 것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어지럽기 이전에 치료하니 바로 이것을 말한다. 무릇 병이 이미 이루어진 후에 약을 쓰고, 어지러움이 이미 이루어진 후에 치료하니, 비유컨대 목말라서 우물을 파고 싸움에 임박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으니 또한 늦지 않는가)라고 예방의학을 강조한다.

부족한 사람의 강의를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4.1.13.
대한경락진단학회에서...
시간의학!! 지지닷컴   편안한 돌! 안초 이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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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류산인
[출처: http://jeejee.name/ 동양학원리-통일장]

지축과 역학 

역학은 우주와 부합해야 합니다. 우주와 부합되지 않는 역학은 역학이 아닙니다. 그냥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또한 우주와 부합될 때, 비로소 미래 예지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지축경사는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한번쯤 깊이 생각해야 하며 반드시 다루어야 할 기본 개념이기에 아래 글을 정리합니다.

1. 지축경사

[우주사실]
우리가 알다시피 지축은 23.5도 기울어 있습니다.
지축은 황극을 향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23.5도 기울어져 자전합니다. 따라서 춘하추동이 생기고,  춘하추동은 물을 생하며, 물은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우주변화원리 참조) 그러나 동시에 지축경사는 많은 모순도 갖게 합니다.

[서경]
서경에 하늘의 기둥을 부러트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는(絶地天通)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축이 기울어짐으로 해서 인간의 독자적으로 탄생하였다고,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많은 모순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까 성경의 바벨탑과 비슷한 내용이네요.

[주역 계사전]
공자는 神을 佑神(오른쪽에 있는 神)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사진 지축으로 만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단 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느님  오른편에 앉았다고(佑神)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이  탄생할 때,  아담과 이브는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원죄는 지축경사의 모순이  원인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쨋거나 서로 論하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위 성인들의 말씀이 지축경사의 사실과 전혀 무관하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만큼, 표현방법은 달라도 분명히 같은 진리를 보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위 사실들을 나열했습니다.


2. 역학도구

[세차운동]
이은성은 '역법의 원리분석'에서, "지구는 적도반지름이 극반지름보다 큰 회전타원체이므로, 적도의 불룩한 부분에 조석력이 작용하여 지축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것이 지축의 선회운동으로 나타난다. 천구의 이런 변동을 세차운동이라고 말한다."라고 세차운동을 설명하면서, 또한, "세차운동 때문에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춘분점의 이동이고, 다른 하나는 북극의 이동이다. 그 일주하는 주기는 약   26,000년이나 된다. 세차운동에 의하여 천의 북극은 황극의 주위를 서서히 역시침 방향으로 선회한다. 13,000년 후에는 직녀성이  북극성의 구실을  한다."라고 지축의 이동을 설명합니다.

[수화상요]

지축의 경사로 실제지축은 하는 일이 없이 자리만  정하고,  실제로는 기울어진 지축으로 춘하추동이 생겨, 수화가 천하의 중이 되어 모든 생명을 탄생하게 됩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건곤은 하는 일이 없고, 수화가  천하의 중이 되어 모든 일을 시작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위 우주사실과 일치합니다.  

[미토]
역학은 中土의 行을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진술축미의 土가  역의 기준 축이 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위 지축경사로  인해 수화가 기준이  됨으로 자오묘유가 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라든지 모든 기준이 자오묘유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위 진술축미 중에서도 토의 중심은  未土입니다. 그것은 목화분열과 금수수렴의 中에 있는 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미토는 토중에 토입니다. 미토는 상화와 연결되어 상당히 복잡합니다.  

[상수]
실제지축은 하는 일이 없으므로 無極이며, 기울어진  지축은 모든 생명의 시작이므로 太極입니다. 이것을 氣數로 볼 때,  무극은 10이 되고, 태극은 1이 됩니다. 數는 逆數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역에 규정되어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무극과 태극이 만물을 이루어내는 것  역시 일치합니다.

위와 같이 실제적인 지축과 기울어진  지축이 적용되는 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실로 역학의 각 부분이 우주에 부합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데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역학입니다.


3. 지축정립

[지축정립]
지축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단지 과학에서는 회전이라는 세차운동으로 설명하는데 반하여, 역학은  정립이라고 표현이 다릅니다. 이것은 바라보는 관찰자 차이가 다르므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황극을 중심으로 보면 회전으로 표현되고,  적도를 기준으로 보면 기울기의 이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지축의 정립이후를 후천세계라고 하는데, 일부는   정역에서 그 시기를 今日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춘하추동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24절기의 명칭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축에  관한 변화를 역학에 반영하고 있는 사람은 일부 하나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14성인이 후천에 이르러 결국 일부에 의해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조선말에  살다 가신 우리의 선학이죠.

[천지변화]
주역 계사전에 천지를 3天2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후천세계에 이르면 3地2天으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착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조력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결국 중화의 방향이 달라지므로 만세력이 변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만세력]
후천세계에 이르면 만세력이 분명히 바뀝니다. 35착종이 29착종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정역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학들이 365일에서 360일로 바뀐다고 소개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한 부분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지만, 易은 원래 360일이 1년이고, 曆이 365일 아닌가요.  

[뇌풍상박]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에서, "문왕8괘도는 震에서 출발하여  艮에서 終止한다. 이 선천주역은 8艮에 와서 終止하여 未濟로 終焉하고, 사물이 마침내 종지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그 종지하는 8간의 자리에서 바로 후천정역이 始發하니, 艮은 止也니 時止則止하고 時行則行하야 動靜에 不失其時 其道光名이라 하여 艮이 終萬物한 자리에서 다시 始萬物함이 光名의  길이라 한 것이다. 8艮은 필연적으로 후천의 발단이 되어  수화가  상요하는 바람에 저절로 선천 3震의  자리를 엄습하여  천하의 중이 되니, 이번의  천하는 선천의 천하와는 달리 온 세계의 천하인 것이다. 왜냐하면 정역에 8은 15之中이라 하였으니, 8간은  선천의 3진과는  달리 10건5곤의 중에 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보아도 震變爲艮한 後의 艮의  판도가 얼마나 광활하며 그 이후 무대가 선천에 비하여 얼마나 광대한가를  볼 수 있다."라고 후천세계의 천하의 중은 진손(뇌풍)이라고 설명합니다.

[간방(艮方)]
선천에서는 건곤은 하는 일이 없고, 수화가 천하의 중이었습니다. 이것이 후천 세계에 이르면 그 주인이 수화에서 간손(뇌풍)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선천의 수화영역과 후천의 간손영역은 그 판도가  다릅니다. 선천의 수화는 건곤의 대리자에 불과한데,  후천의 간손은  건곤의 대리자가  아니라 간손 그 자체가 바로 건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부모를 어기면 위태하다고 비유적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艮은 止로서 후천의 출발점인 동시에 후천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艮은 지역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해당하며, 시간적으로는 후천세계 13,000년의 頭가  됩니다. 이것이 통일한국의 역학적 운명입니다.

상당히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번에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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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류산인

풍수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산태극 수태극인 계룡산.. 그 산줄기의 흐름을 신경준의 산경표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차일봉 철옹산 두류산 추가령을 지나 동쪽 해안선을 끼고 금강산 진부령 설악산 두로봉을 이어며 남으로 맥을 뻗어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덕유산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1대간의 산맥을 말한다.

13정맥 중 금남호남정맥은
백두대간 산맥의 흐름에서 덕유산과 남덕유산 그리고 육십령을 지나면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의 경계점인 백운산 근방 영취산(1075M)에서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진안의 명산 마이산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두 줄기로 갈라지는 도상거리 약 63km 정도의 산줄기를 말한다.  

금남정맥은 금강의 남쪽 울타리를 말하며, 주화산에서 호남정맥을 남으로 이별하고 머리를 북쪽으로 틀어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 구드레나루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 126km 정도의 산줄기를 말한다.

다음은 두산백과사전의 계룡산 설명이다.

높이는 845m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연천봉·
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신라 5악() 가운데 하나로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으며, 풍수지리상으로도 한국의 4대 명산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이 산 기슭에 새로이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을 정도이다. 특히 《정감록()》에는 이곳을 십승지지(), 즉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 했으며 이러한 도참사상으로 인해 한때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정화운동으로 1984년 이후 모두 정리되었다.
 
지질은 대체로
중생대 쥐라기·백악기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령산맥이 금강에 의해 침식되면서 형성된 잔구성 산지로서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뛰어나다. 노성천·구곡천·갑천·용수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기온은 11℃ 내외, 연강우량은 1,280mm이며 6~9월에 강우량의 90%가 집중된다.

각 봉우리 사이에는 7개의 계곡과 3개의 폭포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며, 자연경관이 빼어나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계룡팔경은 대표적인 관광명소인데 제1경은 천황봉의 일출, 제2경은 삼불봉의 설화(), 제3경은 연천봉의 낙조(), 제4경은 관음봉의 한운(), 제5경은 동학사 계곡의 숲, 제6경은 갑사 계곡의 단풍, 제7경은 은선폭포, 제8경은 오누이탑의 명월()을 가리킨다.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동학사에서 오누이탑-금잔디고개-신흥암-용문폭포를 거쳐 갑사로 가거나 은선폭포-관음봉-연천봉을 거쳐 갑사로 가는 코스, 갑사에서 연천봉-
고왕암을 거쳐 신원사로 가거나 동학사에서 은선폭포-관음봉-연천봉을 거쳐 신원사로 가는 등 여러 코스가 있으며 대개 3~4시간이 소요된다.
 
좀닭의장풀·
개맥문동·금관초·벌개미취·골잎원추리·산바랭이 등 6종의 한국 특산종이 자라며, 이밖에 황매화·팽나무·느티나무 등 식물 611종과 노루·너구리 등 산짐승 23종을 비롯해 총 1,16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 또 갑사 철당간 및 지주(보물 256)·갑사 부도(보물 257) 등 보물 6점을 포함해 지정문화재 15점, 비지정문화재 13점이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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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산(국사봉)은 일부선생의 정역을 탄생시킨 요람지(향적산방)이며, 동양학자들의 대 가람의 터로 지기가 강한 화강암반으로 뭉쳐진 곳이며, 계룡의 안산(입수처, 필자생각)에 해당되는 곳이다.   

지난해 여름(07.7.8.) 동약학과 정역의 통일장을 연구하는 안초선생의 권유로 공경옥님, 김태정님 그리고 본인을 포함한 4명의 인원이 국사봉을 탐방했다. 이곳의 사진은 안초선생께서 직접 촬영하여 동양학원리-통일장(http://jeejee.name/) 에 올린 것을 옮겨왔다.

아래 사진은 국사봉 탐방전의 중의원리 강의를 마친 기념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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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을 오르는 장군암 부근에서 바라본 국사봉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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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국제선원 무상사 푸른눈의 외국인 스님의 모습을 쉽게 접할수 있는 사찰 '03. 3월 개원한 무상사는 서울 화계사와 함께 외국인 수행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국제선원이다.)를 둘러보고 국사봉 오르는 삼거리 길에서.. 벌써 온 몸이 흥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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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오르는 길에서 첫번째 후식 후, 지나는 이에게 한컷 부탁하고.. 지금 사진을 보니 공경옥님은 비몽사몽(발목을 다쳐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등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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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산방 못미쳐 기도도량인 귀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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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에서 하수오를 만나는 행운이.. 흰머리 검게하고 빠진머리 다시 돋게 한다는 하수오를 태정님 보고 가을에 꿀꺽하라고 했는데..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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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와 혼돈하는 분들을 위해서 한컷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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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산방에서 담소 중.. 주인장이 자리를 비워 빈 집에 객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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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위에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내린 거북바위 전경.  암굴안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의 영향으로 시원한 바람이.. 일부선생께서 한 소식한 자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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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의 힘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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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암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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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본 용이 승천하는 용바위의 웅장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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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용바위 전경. 용의 등줄기가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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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이 공부했을까.. 향적산방 옆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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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오르는 마지막 과협 터에서 양쪽 어느 곳으로 올라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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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에서.. 뒷쪽 산줄기가 천왕봉으로 기어가는 용의 등줄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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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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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과 남두육성 비석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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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표시한 8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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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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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계룡의 안산으로 손색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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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중앙 희미하게 솟은 봉우리가 대둔산임. 대둔산을 계룡산의 안산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리 있으며  계룡의 부속산이 아닌 독립된 산으로 보아야 할 것임.
금남정맥(필자는 계룡정맥으로 칭함) 지기의 흐름인 용틀임을 확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국사봉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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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에서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쟁을 치른 접경지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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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안이 있는 계룡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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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면서 향적산방 한컷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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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국사봉 탐방을 마치다.

물줄기와 지맥의 흐름에 대한 이 한마디(물론 100%는 아니지만)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로 이땅의 지기의 흐름을 살펴야 할 것이다. 국사 시간에 배운 '오대산에서 발원한 차령산맥이 흘려 내려 남한강을 이루고 계룡산을 우뚝 세우고 서해안에서 흐름을 다하다' 등의 학설은 재검토 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편협된 종교적인 성향으로 국사봉 역사를 이용하는 사례도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천황봉으로 칭하는 모든 봉우리는 천왕봉으로 고쳐 불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천황으로 불리는 이름들은 경술국치 한일합방 이후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관심있는 분들의 심도있는 학문적 탐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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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류산인
지리산 고운동은 최치원선생의 흔적 중 유일하게 그의 호가 지명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는 곳이다. '내 산에 들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며 홀연히 사라진 고운의 발차취가 스며있는 천년의 비밀이 숨겨진 고운동 운적사를 탐방하였습니다.


조선 선조 24년(1591년) 산사를 찾아가던 한 노승이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헤매다가 바위틈에서 여러 권의 책을 발견했다.
시 16수 등이 씌어진 이 책은 구례 군수 민대륜(閔大倫)가 입수했는데, 민 군수는 조선 중기 명신 이지봉(李芝峯, 수광)에게 책 감정을 의뢰했다.


이지봉은 고운 최치원 특유의 정교한 필적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책에 담긴 글은 천하의 대문장가 최치원의 것이 분명했고, 시 또한 그의 작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지봉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이 시를 옮겨 실었다. 그 가운데 8수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
출처:
'1000년 신선(神仙)'의 족적(3)|작성자 최화수의 산에산에]


아래 시는 전해지고 있는 시 8수를 엮어 최고운의 호중별천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東國花開洞   동국화개동      우리 나라의 화개동은
壺中別有天   호중별유천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네
仙人推玉枕   선인추옥침      선인이 옥베개를 밀치니
身世훌千年   신세훌천년      몸과 세상이 문득 천년이로다   *훌-문득 훌. 火셋에 欠
春來花滿地   춘래화만지      봄이 오니 꽃이 땅에 가득하고
秋去葉飛天   추거엽비천      가을이 가니 낙엽이 하늘에 흩날리네
至道離文字   지도리문자      지극한 도는 문자를 떠난 것
元來是目前   원래시목전      원래의 모습 눈앞에 있도다
擬說林泉興   의설임천흥      자연의 흥취를 시로 읊조리나
何人識此機   하인식치기      어느 누가 이 기미를 알겠는가
無心見月色   무심견월색      무심히 달빛을 바라보며
默默坐忘歸   묵묵좌망귀      묵묵히 앉아서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리네
密旨何勞舌   밀지하노설      천지의 비밀을 말해 어찌 혀를 수고롭게 하겠는가
江澄月影通   강징월영통      강이 물을 버리니 달빛이 그림자되어 내마음과 통하네

고운이 유불선 통합의 풍류도를 전파하며 신선이 되고자 청학동을 찾아헤멘 곳곳의 흔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강산과 선유도의 책바위(공부하던 곳)
- 합천 가야산 홍류동과 탕근바위
- 벽송사 두류능선의 다리골
- 함양 휴천의 마적대(말이 시장을 보아 오던 곳)
- 법계사의 문창대(지팡이와 짚신을 놓았던 곳)
- 화개동천 신흥마을의 삼신동(필적)
- 화개동천 세이암(귀를 씻은 곳)과 쌍계석문(필적)
- 불일폭포 주변의 옥천대(공부하던 곳)와 환학대(학을 부른 곳)
- 용두리 청계계곡 단속사 광제암문(필적)
- 지리산 거림의 갓걸이골
- 반천계곡 배바위의 피리골(피리를 불며 산책하던 곳) 등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후속 글을 기다린다. 문헌과 구전에 의하면 지리산 자락 고운의 흔적은 화개동천, 고운동, 법계사, 단속사, 함양 마천, 가야산 주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고운의 호가 지명에 스며있는 고운동은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흔적

1.난랑비서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道曰 風流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 제4, 24 진흥왕 37년조).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는 현묘한 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三敎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또한 그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니 이는 魯나라 司寇(공자의 벼슬)의 敎旨이며, 또한 모든 일을 거리낌없이 처리하고 말 아니하면서 일을 실행하는 것은 周나라 柱史(노자의 벼슬)의 宗旨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행실만 신봉하여 행하는 것은 竺乾太子(가비라성의 석가)의 敎化이다.(金鍾權 譯,<三國史記>, 광조출판사, 1979, p.69. 崔虎 역해, <三國史記>홍신문화사, 1994, p.84. 李丙燾 역주,<三國史記>, 을유문화사, 1992, p.74)






다음은 불사가 시작되고 있는 운적사 경내를 두루 살펴보기로 합니다.

법당 대웅전 불사예정지에 안치된 비로자나불과 산신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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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돋아난 황금주목과 법당, 산신궁과 주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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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체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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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수와 자연수석으로 조성한 연꽃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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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으로 자란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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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목으로 자란 고로쇠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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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수석 탁자와 의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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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수석 탁자와 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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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앞 정원의 서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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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소나무 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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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 정원의 수석들   모양을 상상하고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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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모양일까요..  삽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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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과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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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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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피나무 열매는 지리산에서 나는 것을 제일로 치지요. 특히 서부경남에는 집집마다 배초향(방아잎)과 제피나무를 심어 매운탕이나 음식을 만들 때 향신료로 사용하지요.
산초나무와는 다릅니다. 가시가 돋아난 것을 잘 관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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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숭아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네요. 효소용으로 최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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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꽃도 피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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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이사온 백두양귀비가 예쁘게 피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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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삼만평 부지 중 가꾸어진 경내의 원림의 정원 일부만 살펴보았습니다.
불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많은 부분이 바뀌어 지겠지요.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원림속의 운적사가 탄생하길 기대하면서 다음 산사음악제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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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풍수

유물은 제 자리에 있어야 제 구실 한다
삼재불입지처의 사고(史庫)와 비룡입수의 적멸보궁

▲ 사고 원경. 선조 39년(1606년)에 이 지역이 물, 불, 바람의 삼재(三災)를 피할 수 있는 길지라고 하여 사각과 선원보각을 건립하고, 왕조실록과 선원보략(璿源譜略·조선왕실 족보)을 이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조실록을 동경대학 도서관으로 반출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더욱이 1923년에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도서관에 소장된 장서와 함께 조선왕조실록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만 대출되어 화재를 모면한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대(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편입되었고, 이번에 동경대학 도서관에 반납되었던 47책을 지난 7월 서울대학교에서 환수했다.

▲ 오대산 적멸보궁. 풍수지리 상으로는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 즉 비룡함주(飛龍含珠) 형국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종 13년(1413)에 태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세종 때에는 동활자로 4부를 인쇄하여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에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후 1부밖에 없는 왕조실록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1603년부터 3년에 걸쳐 전주사고본을 저본으로 실록을 인쇄하여 춘추관(1623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을 비롯하여 강화도의 정족산, 봉화의 태백산, 무주의 적상산, 평창의 오대산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분산하여 보관하였다.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본래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03)의 모든 분야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총 1,893권 888책의 방대한 역사서다. 최고의 통치자이며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임금도 열람할 수 없는 조선왕조실록은 위대한 우리 민족의 문화재로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적멸보궁 입수처. 적멸보궁 뒤편에는 용의 뿔에 해당되는 암석이 강력한 지기를 품고 있다.
왕조실록을 보관한 곳은 강화도의 정족산을 제외하고는 우연하게도 봉화의 태백산, 평창의 오대산, 무주의 적상산 세 곳이 백두대간 근처에 위치하였다. 이중 오대산 사고는 조선 선조 39년(1606년)에 이 지역이 물, 불, 바람의 삼재(三災)를 피할 수 있는 길지라고 하여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건립하고 왕조실록과 선원보략(璿源譜略·조선왕실 족보)을 이관하였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으나 1992년에 선원보각과 사각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왕조실록을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하겠다고 하여 월정사측과 시비가 일고 있는데, 문화재는 원래 있었던 자리에 있어야 역사적 가치도 빛나며 장소성의 의미도 있는 법이다.

태백산사고본은 국가기록원에서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고, 정족산사고본과 산엽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이며, 적상산사고본은 북한에서 보관중이다. 따라서 오대산사고만이라도 비록 왕조실록의 일부이지만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왕조실록 반환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오대산사고는 삼재불입지지 

▲ 오대산 사고지 안내판.
선조실록 192권 38년(1605) 10월8일의 기록을 보면 강원감사와 정선군수가 동행하여 오대산사고의 안전성 확인과 함께 새로 인출한 실록을 사고에 봉안할 일로 실록청이 아뢰는 대목이 나온다.

‘강원감사 윤수민(尹壽民)이 치계하였다. 실록을 봉안할 곳의 지세를 살피는 일로 건각차사원(建閣差使員) 정선군수이여기(李汝機)를 거느리고 오대산에 들어가 간심(看審)하였는데, 금년 수재에 이 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 곳곳이 무너져 내렸으므로 평탄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직 상원사가 동구부터 30리에 위치하였는데 지세도 평탄하고 집이 정결하므로 임시 봉안하기에는 아마 편리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막중한 선왕의 실록을 사찰에 소장하는 것이 또한 미안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해조(該曹)로 하여금 요량하여 결정하게 하소서.’

실록의 중요성 때문에 감사와 군수가 사고의 터를 직접 살핀 기록이 나온다. 사고의 위치선정에 있어 풍수지리적인 이론을 감안하여 적용하였을 것이다. 실로 오대산 사고는 깊은 산중 해발 817m에 자리 잡았으며,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사각 건물을 중심으로 전주작, 후현무, 좌청룡, 우백호가 사각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안전한 자리다.

그런데 사람에게 생노병사가 있고 풍수지리에도 생왕휴수(生旺休囚)가 있으므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지운이 끝나기 마련이다. 지운이 끝나는 시기를 현공풍수이론에서는 ‘입수(入囚)되었다’고 용어를 사용하는데, 입수가 되면 지기가 휴식상태가 되기 때문에 재정양패(財丁兩敗)가 되며, 그 피해의 정도가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최근에는 풍수지리를 실생활에 활용하여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인정을 한다. 그리고 좋은 명당을 찾기 위하여 수고도 아끼지 않지만, 지운이 언제 끝나며 지운이 끝나게 되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조상의 묘를 오랫동안 보존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울러 지운이 끝나는 시점이 되어 화장한다면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공풍수의 대가인 중국의 우설행(尤雪行·1873-1957) 선생의 이택실험(二宅實驗)이라는 내용을 보면 화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화장할 경우 길흉화복의 유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화장하는 동시에 인체에 유전인자의 근본이 되는 DNA도 파괴되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화장하면 모든 것이 소멸되어 ‘무극(無極)’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길흉화복도 자연히 없을 뿐더러 풍수지리 이론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명당이 아닌, 즉 일반적인 땅의 경우 음택과 양택의 지운기간은 표와 같다. 표를 보면 24개 좌향 중에서 특히 술(戌), 건(乾), 해(亥) 3개 좌향은 어느 운에 용사(用事)하더라도 대개 160년이라는 장기간 지기가 지속되지만, 진(辰), 손(巽), 사(巳) 3개 좌향은 비교적 기간이 짧다. 

지운기간표에서 하(下)는 1개 좌향의 범위인 15도 중 중앙의 9도 범위로 입향(立向)하였을 경우이고, ‘체(替)’는 15도 중 양변의 3도씩의 범위로 입향하였을 경우다. 그리고 운은 20년 주기이며, 현재 2006년은 8운(2004-2023년)에 속한다. 지운기간표의 숫자는 해당 운의 첫해에 용사하였을 때의 기간이다.

그리고 좌향에 따라 미치는 영향력과 발복하는 속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오대산사고의 건축시기인 1606년은 6운 3년차이며, 좌향은 해좌손향(하괘)이므로 지운기간은 160년이며 5운이 되면 입수가 된다. 즉 6운 3년차인 1606년부터 158년(160-2)이 지나 5운(1764-1783년)이 돌아오면 지기가 끝나지만 오대산사고는 좋은 명당이기 때문에 또 180년을 추가하여 338년(158+180)이 지나면 두번째 5운(1944-1963년)기간 중인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지운이 끝나게 된다.

▲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대학으로부터 환수받은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을 전시 중이다.

적멸보궁은 비룡함주의 명당

오대산에는 유명한 월정사가 있지만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절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적멸보궁은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다. 이곳 적멸보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보궁 뒤편에 1m 높이의 석탑이 있을 뿐이다.

이 적멸보궁은 신라 고승인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오대산 중대사를 비롯하여 설악산 봉정암, 취서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5곳 명당에 나누어 모셨다. 자장율사는 오대산 중대를 문수진성의 주처라 생각하여 적멸보궁을 짓고 부처 사리를 봉안하였다.

비로봉(毘盧峰·1,563m)을 주산으로 좌청룡에는 상왕봉(象王峰·1,493m)과 우백호에는 호령봉(虎嶺峰·1,560m)을 양쪽에 두고 해발 1,168m의 높은 곳에 결혈(結穴)한 천하 대명당인 적멸보궁은 풍수지리상으로는 나는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 즉 비룡함주(飛龍含珠)의 형국이다.

그런데 1,168m의 높은 지대에도 명당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풍수지리에서는 결혈이 되는 모양과 위치에 따라 전통적으로 다섯 가지의 격으로 구분한다. 즉, 직룡입수(直龍入首), 횡룡입수(橫龍入首), 비룡입수(飛入龍首), 잠룡입수(潛龍入首), 회룡입수(回入龍首)가 있는데, 적멸보궁은 비룡입수에 해당된다.

풍수고서에 의하면 비룡입수는 높은 산중에 작은 평지를 이룬 곳으로 실제로 올라가서 보면 높은 줄을 모르며 뒤편에는 작게 솟은 곳이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곳 적멸보궁 뒤편에는 용의 뿔에 해당되는 암석이 강력한 지기를 품고 있다.

적멸보궁은 천하 명당인 관계로 언제나 기도하는 신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적멸보궁은 명당이기는 하지만 음택명당이 되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짧은 시간에 강한 지기를 받기 위한 기도처로 아주 적합한 곳이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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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지명

가라매 고을의 다섯 봉우리 오대
오대산의 대(臺)는 단순히 봉(峰)의 의미

강줄기가 좁은 골 지나 활짝 열린 곳
굽이진 곳 백 길 높이 자리한 선원(禪院)
맑은 물엔 하얀 자갈 환히 보이고
오솔길엔 푸른 이끼 온통 뒤덮였구려
세상을 그냥 초월하면 그만인 것을
뭣 때문에 오대산을 굳이 가려 하시는고
동쪽 개울에 병들어 누운 거사님
한 해 쉬고 돌아올 그대를 기다림세
(江出峽門開 / 禪房百尺외 / 淸流分素礫 / 細逕入蒼苔 / 直可超三界 / 何須向五臺 / 東溪病居士 / 遲汝隔年回)
-이식(李植)의 택당집(澤堂集)에서(울암 鬱巖에서 노닐 적에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혜종 惠宗 선사에게 작별 선물로 준 시. 울암은 지금의 강원도 원주 지정면 월송리의 한 지명)


문헌에 나타난 오대산의 이름 유래

옛 문헌들에서는 강원도의 오대산을 ‘오대산(五臺山)’으로 쓴 것 외에 뒷음절 산을 뺀 오대로 쓴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즉, 대(臺) 자체를 그대로 산이란 말에 대신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대를 굴(窟), 덕(德)과 함께 산지 지명에 포함시켰다. 이 지도에서는 대가 무려 96개나 나온다.

산지에서 고원이나 대지(臺地)에 해당되는 지명이 바로 대와 덕이다. 즉, 대는 경포대(鏡浦臺·강릉), 강경대(江景臺·논산), 낙수대(落水臺·안동)와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을 뜻한다. 덕은 오늘날의 고원을 뜻한다. 고원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엔 별로 사용치 않았으므로 학자들은 덕을 고원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다.

대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차나 항공기, 기계 같은 것의 수를 세는 데 쓰는 말, ②수, 연수(年數), 액수 따위의 다음에 쓰여 그 대체의 범위를 나타내는 말, ③(흙, 돌 등으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 ④물건을 받치거나 올려놓는 물질의 통틀어 일컬음 등이다.

땅이름에서 대의 뜻은 ③에 해당할진대, 이것은 옛 사람들이 흔히 생각해 왔던 뜻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대(臺)의 한자는 형성문자로, 土(토)와 高(고)의 생략 글자인 至(지)가 합쳐진 것이다. 즉, 흙을 높이 쌓고,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로 보인다(台를 臺의 약자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오대산이란 이름에서의 대는 위의 자원(字源) 설명처럼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든 전망대’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여말선초의 학자이며 문신인 권근(權近·1352-1409)은 오대산의 이름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강원도의 경계에 큰 산이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함께 우뚝하다. 크기가 비슷하면서 고리처럼 벌렸는데, 세상에서는 오대산(五臺山)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의 가운데 것은 지로(地爐), 동쪽은 만월(滿月), 남쪽은 기린(麒麟), 서쪽은 장령(長嶺)이라 하며, 북쪽은 상왕(象王)이라 한다. 드디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항상 머문다는 말이 있고 불가에서 성대히 칭송하지만, 우리 유가에서는 증거할 것이 없으므로 자세하게 적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오대산이란 이름은 다섯이라는 뜻과 산(봉우리)의 뜻인 대가 합쳐져 나온 이름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의 대는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사전적인 뜻처럼 꼭대기가 평탄해서이거나 야산의 뜻으로 대를 취한 것도 아니다. 편하게 말한다면, 오대산은 오봉(五峰)과 뜻이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 두로봉 동쪽 상공에서 본 오대산. 앞쪽 능선이 두로봉 부근의 백두대간 마루금이고, 그 뒤로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펼쳐졌다.

‘가라매’로 불렸을 오대산 일대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오대산 일대의 고을 이름이 지산현(支山縣)으로 나온다. 즉, 지금의 강릉시 연곡면, 사천면, 주문진읍 일대를 그렇게 불렀는데, 이 이름은 고려시대에 와서 연곡현(連谷縣)으로 바뀐다. 즉, 지(支)가 연(連)으로 대역되었고, 산(山)이 곡(谷)으로 대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곡현은 뒤에 강릉(명주) 고을에 속한 연곡면으로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강릉시의 한 면이름으로 자리잡는다.

한자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삼국시대 이전에는 모든 고을이 거의 순 우리말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당시에 한글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를 제대로 표기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 조상들은 뒤에 이를 문자화할 때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빌어 표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토박이 땅이름들이 소리빌기(음차)나 뜻빌기(의차)의 한자 옷을 입고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한자 지명을 잘 뜯어 풀어나가 보면 그 원이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낼 수가 있다.

오대산 일대의 삼국시대 지명 지산과 고려시대의 지명 연곡을 결부시켜 보면 이곳의 원래 땅이름은 가라매 또는 갈매,갈메일 가능성이 짙다. 지(支)는 재의 음차로 쓰인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뒤에 연(連)이 지(支)에 바탕을 두었을 것으로 보아 ‘갈’ 또는 ‘가라’라는 원말을 유추할 수 있다.

갈은 갈라짐 또는 연달아 이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가라매(갈매)는 갈라져 나간 산, 또는 산이 이어져 나간 줄기(支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 지형을 보더라도 오대산 일대에서 큰 산줄기가 서쪽으로 크게 갈라져 나와 있다. 동해안쪽으로 이어져 내린 백두대간이 오대산 부근에 큰 산무리를 만들고, 여기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를 뻗혀 계방산, 태기산, 금물산, 용문산, 유명산 등의 봉우리를 솟구며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을 만들고 있음을 본다.

지산 또는 가라매라는 이름이 꼭 산줄기를 크게 가른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어떻든 이 이름이 오대산의 지형과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지형과 거리가 먼 산맥 이름들

오대산에서 산줄기가 길게 갈라져 나갔음을 얘기한 김에 산맥(山脈)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 언급할까 한다. 우리 한반도의 큰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개마고원을 따라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해안을 따라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고, 태백산 부근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꺾여 멀리 남해안 끝까지 닿는다. 따라서, 지금의 남해안의 한 산줄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가면 어느 하천도 건너지 않고도 백두산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익히 배워 온 산맥의 이름들은 장백, 마천령, 함경,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구조곡), 광주, 차령, 소백, 노령산맥 등이었다.

이 이름들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藏文次郞)가 1903년에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하여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失洋昌永)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 기인한다.

이 산맥 이름들은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모양,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한 것으로 땅속의 맥 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예를 들면, 광주산맥은 금강산 북쪽에서 시작하여 북한강 상류를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관악산과 광교산으로 이어 놓고, 차령산맥은 설악산과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되어 남한강을 건너 금강 하류를 끼고 돌아 대천 뒤쪽으로 이어 놓고 있다. 즉, 이러한 지도로만 보면 많은 산맥들이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일제 때는 산맥이라는 개념 자체를 땅 위의 어떤 선상(이어짐)을 기준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하고 있어 우리 조상들의 산경-수경 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 조상들은 땅의 모양(지형)을 기초로 하여 산줄기를 이어 표시한 데 반해 일본인은 땅의 성질(지질)을 따라 선을 이어나가 이를 광주산맥, 차령산맥 식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제 이후부터 최근까지 교과서를 통해 익혀온 여러 산맥들 중에는 그것이 우리 옛 지도에서 어느 정맥에 해당한다는 식의 논리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한 세기 전의 낡아빠진 한 학설이 ‘우리’라는 ‘채’에 아직도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우리 땅의 산줄기와 아무 관계도 없이, 우리 생활과 아무 관계도 없이, 그리고 자연지리의 활용면에서도 별 도움 없이 지금도 학교에서 그대로 교육하고 있어 이의 시정이 시급하다(북한에서는 지리 용어로 산맥 대신 산줄기란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북한 지도에서는 □□산맥 식의 이름은 없다).


도선에 의해 ‘대간’이란 낱말 처음 나와

대간(大幹)이란 말은 고려 초(10세기 초)에 유명한 풍수가이며 승려인 도선(道詵)에 의해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대간(大幹)이란 말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이중환의 택리지(1751)다. 그리고, 백두대간이라는 고유명사적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그 10년쯤 후인 1760년경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의해서였다.

그 뒤, 산경표(1770년경)의 저자 신경준은 백두대간의 산줄기 상황을 보다 상세화하고 표로써 제시하였다. 그에 의해서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당대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대간의 구체적 내용도 알기 쉽게 체계화되었다. 그 후에도 다산 정약용이 그의 대동수경(大東水經)(1814)에서 백산대간(白山大幹)이 풍수지리 상의 용(龍)에 해당된다며 백두대간에 관해 언급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산맥이란 말을 써오기는 했지만, 일반인들은 산줄기란 말을 더 많이 써 왔다. 풍수에서는 지맥(地脈)이란 말을 많이 써왔는데, 이것은 산맥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산맥이란 말을 지금의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산맥=산줄기(산지가 좁고 길게 연속되어 있는 지형)’, ‘산줄기=뻗어나간 산의 줄기. ‘산발’과 같은 말‘로 풀이해놓고 있다. 즉, 산맥의 사전적 의미는 이처럼 버젓이 지형과 결부하여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적 의미의 산맥이라는 단어 앞에 광주니 차령이니 하는 지명을 달아, 지형적이 아닌 지질적으로 설명되는 그 줄기들에 광주산맥이니 차령산맥이니 하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지표면의 줄기가 아닌, 지하의 줄기(지질맥)임에도 실제의 산줄기가 그렇게 지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차령산맥이라고 하면 사실상 지하의 맥을 기본으로 한 것임에도 차령을 지나는 산줄기(지상의 줄기)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요즘 학계에서 백두대간, 한북정맥, 호남정맥 식의 산줄기 이름을 공식화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 조상의 지형 개념인 산줄기 개념이 보다 과학적이고, 산줄기 이름이나 모든 지리 용어가 일본식으로 된 점을 지적하고, 지금부터라도 교과서를 우리식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러는 한북정맥이니 금남정맥이니 하는 것이 단순히 강을 기준으로 붙여진 것이어서 합당치 않다며 아예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

10여 년 전 나는 회원들(한국땅이름학회 한강탐사반)과 함께 남한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에서부터 한강 줄기를 따라, 도보로 또는 고무보트를 타고 경기도 김포의 한강 하구까지 답사한 일이 있다. 물줄기만 따라 탐사했으므로, 즉 물의 흐름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가기만 했으므로 우리 일행이 작은 고개 하나라도 넘었을 리 없다.

그런데, 따라간 물줄기를 우리가 보통 보아온 지도로 보니 두 개의 산줄기를 넘은 것이 아닌가. 그 하나는 경기도 여주 부근에서의 차령산맥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리시와 광주땅을 잇는 광주산맥이었다. 분명히 지도상에서는 이 두 산줄기가 우리 일행이 지난 남한강 줄기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당시 살펴본 지도는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였다).

이 어찌 된 일인가? 지도가 이렇게 된 것은 지도 속에 표시된 산맥이 지형에 따라 그려진 것이 아님을 답사를 통해서도 확실히 알게 된 나는 우리 조상들이 그린, 산줄기를 평지에까지 올바르게 지형적으로 자세히 그려낸 옛 지도의 가치를 더욱 높이 사게 되었다.

2005년 1월14일 KBS 뉴스를 통해 ‘사라진 차령산맥, 그 진실은’이라는 제목으로 산맥지도에 관한 보도가 나간 일이 있었다.

-앵커 : 최근 국토연구원이 새로 발표한 산맥지도가 논란과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차령산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쓰여졌던 차령산맥이 왜 없다는 것일까요? 그 근거를 김태욱 기자가 추적해 봤습니다.
-기자 : 강원도에서 충청도까지 한반도 남쪽을 가로질러 이어지고 있다는 차령산맥. 하지만 이번에 국토연구원이 새로 발표한 산맥지도에는 이런 산줄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KBS 항공 1호기는 지금 차령산맥이 태백산맥으로부터 갈라져 뻗어나가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알려져 있는 오대산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차령산맥 방향인 서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보겠습니다. 북쪽에 보이는 설악산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차령의 중간 기착지라는 치악산이 구름 사이로 수줍게 봉우리를 드러냅니다. 굽이굽이 이어진 오대산 줄기를 따라 계속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치악산 정상이 눈앞입니다. 하지만, 산을 넘어서자마자 산세가 눈에 띄게 작아집니다. 이 낮은 구릉지대마저 곧 남북을 관통해 흐르는 남한강에 가로막히고 맙니다.
-김송걸(KBS 항공 1호기 기장) : 이거 맥이 끊어진 거야.
-기자 : 위에서 보면 확실히 끊긴 거예요?
-김송걸 : 끊겨 있지.
-기자 : 이곳 남한강을 만나면서 오대산에서부터 치악산을 넘어 이어져 내려오던 산줄기는 완전히 맥이 끊겼습니다. 충청도까지 길게 가로질러 있다던 차령산맥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산맥과 실제 지형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현진상(산악인·<한글 산경표> 저자) : 산악체계의 지도로는 산을 다닐 수가 없습니다. 고지도에 나타난 산줄기대로라면 얼마든지 종주가 가능합니다.
-기자 : 실제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우리의 대동여지도나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반면, 차령산맥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산맥 모습도 새 산맥지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일본인 지질학자가 현재 산맥체계를 만든 시기는 산경표보다 100년이나 후대인 1903년. 과거에 없었던 차령산맥이 갑자기 생겨나게 된 이유는 뭘까?
-양보경(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 : 지리학계에서는 지질구조라든가 또 여러 가지 단층선, 이런 것에 의거해서 교과서에서 활용을 해 왔었던 거죠.
-기자 : 강으로 단절돼 있더라도 같은 지질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한 산맥으로 봤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국토연구원의 조사 결과 근거 없는 주장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영표(국토연구원 CJS연구센터장) : 한반도의 산이 지질 구조로 돼 있는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살펴보니까 지질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자 : 오히려 애초부터 조사 자체가 빈약했거나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영표 : 망아지 4마리와 인부 6명을 데리고 가서 우리나라 전부를 답사했다고 하는데, 14개월 동안 답사해 봤자 얼마나 답사를 했겠습니까?
-기자 : 결국 우리 지리학계가 지난 100년 동안 아무 비판이나 검증 없이 일본인이 만든 산맥지도를 받아들여 후대에 가르쳐온 셈입니다. 이 때문에 혈맥처럼 이어진 백두대간은 허리가 끊겼고,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정용미(환경운동연합 백두대간 보전팀장) : 사실 80년대부터 산맥체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었는데, 정부나 학계에서 노력을 게을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이번 새 산맥지도의 발표가 우리 산의 본모습을 되찾았다는 기쁨보다 더 큰 충격과 허탈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KBS뉴스 김태욱입니다. 
이러한 주장이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주위에 맴도는 산맥 관련 지식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일부 학계의 입김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오대산과 차령이 직접 손잡았다고?

▲ 예부터 한강의 상징적 발원지로 알려진오대산 우통수.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보면 차령산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고 있다.
‘태백산맥은 힘찬 기세로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대관령,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데, 태백산맥이 대관령을 넘기 전에 곁가지 하나를 늘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차령산맥으로, 이 산맥은 치악산을 걸쳐 충청남북도를 관통해 서해의 대천 앞바다로 이어지는 성주산에서 마감한다. 태백산맥이 차령산맥으로 갈려나가는 지점, 즉 차령산맥의 발원지가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즉, 오대산에서 가지를 친 차령산맥이 서해안까지 직접 달려갔다는 것이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240m, 예산 남동쪽 11km, 공주 북서쪽 22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로 양장로를 이루며, 남금강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하는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며,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높이 180m, 공주 북쪽 22km, 천안 남쪽 16km 지점으로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이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경계로 하여 호서와 호남지방을 지방을 구획해 왔으며, 금강의 지류인 정안천과 곡교천이 여기서 발원하여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이것은 공주시의 한 농협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의 ‘차령’ 설명 내용.
그러나, 지형 상으로 차령산맥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지금의 지형도에서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충남의 서해안까지 닿는 산줄기를 접하게 되는데, 실제 등고선을 따라 선을 그려 나가 보면 그러한 차령산맥의 선이 절대로 그려질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성주산, 차령 등의 산과 고개가 있는 곳은 대동여지도 상에서 보면 금북정맥이다. 이 정맥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한 맥으로, 죽산(안성)의 칠현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안성, 충청도의 공주, 천안, 청양, 홍주, 덕산, 태안의 안흥진에 이어지는 금강 북쪽의 산줄기다. 즉,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왔다는 종래의 차령산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차령산맥에는 서운산(瑞雲山·547m)을 최고봉으로 500m 안팎의 산지가 솟아 있고, 이 산맥 중의 덕성산(德成山·519m)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칠현산(七賢山·516m), 칠장산(七長山·492m), 도덕산(道德山·366m) 등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지가 형성하는 능선을 따라 안성시는 동서 2개의 지형구로 나누어진다. 또한 북쪽 용인시 경계 부근에는 구봉산(九峰山·465m), 비봉산(飛鳳山), 쌍령산(雙嶺山) 등의 구릉성 산지가 이어진다. 그러나, 군의 남서쪽과 북동쪽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데 특히 남서쪽의 안성평야는 넓고 비옥하다.’

여행 관련의 한 홈피에서도 경기도 안성시 부분에서 이처럼 차령산맥을 설명하며 거기에 속한 여러 산들을 들고 있는데, 사실 이들 산이 모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에 있는 것이지, 오대산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한강을 넘어온다는, 실제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에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백두대간 중의 오대산은 산과 물의 관계에서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이 산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가 남한강과 북한강의 유역권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한강물의 발원지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실제, 물줄기의 길이로 보아서는 오대산에서 나온 물줄기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보기 어려우나, ‘큰 강은 명산(名山)에서 그 물줄기를 시작한다’는 옛 사람들 생각에 근거하여 보면 이 산은 분명히 한강의 상징적 발원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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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류산인
[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식생

토심 깊은 육산이 키워내는 짙고 푸른 숲
전나무·신갈나무숲에 좀개미취·구실바위취·금강초롱꽃 자생

▲ 전나무숲. 오대산 명물 가운데 하나인 이 숲은 월정사 부근에 있다. 수령 100년에서 500년 사이의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 난 900여m의 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오대산 상봉인 비로봉(1,563m)은 백두대간 마루금에 솟아 있는 산이 아니다. 백두대간 상의 두로봉(1,422m)에서 남서쪽으로 무려 6km나 물러나 앉아 있다. 두로봉에서 상왕봉(1,491m)을 거쳐 비로봉(1,563m)까지는 15리가 넘는 높고 긴 능선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대산을 백두대간의 산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주봉이 대간 능선에 서 있지 않으면서도 대간의 산으로 여기는 오대산. 그 이유는 오대산의 너른 산세와 높은 고도에서 기인한다. 비로봉을 호위하듯 남북으로 서 있는 상왕봉, 호령봉(1,561m) 등의 주봉 부근의 산봉우리는 물론이고 저 멀리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루고 있는 노인봉(1,338m), 동대산(1,434m), 두로봉 등의 산봉우리들을 거느려 넓은 산역을 자랑하는 오대산은 높이 면에서도 국립공원 가운데 다섯번째 높이를 자랑한다.

넓은 산역, 높은 고도, 높은 고도에 형성된 능선들, 이 능선들 사이를 흐르는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계곡들은 오대산의 식물을 풍부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오대천 상류에 북방계 희귀식물 좀개미취 생육

▲ 좀개미취 - 영월 이북의 습지에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핀다. 남한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희귀식물이며, 월정사 부근 계곡에 분포한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숲은 오대산의 숲을 대표할 만하다. 수령 100~500년이나 되는 아름드리 전나무 1백만 여 그루가 250만 평의 짙푸른 숲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난다.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은 그늘을 만드는 전나무숲 사이로 난 산책로와 숲속에 자리 잡은 큰스님들의 부도밭은 자연의 신비감, 그리고 숲과 사람의 조화를 실감하게 한다.

더욱이 이 전나무숲 부근에서는 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운 귀한 풀꽃 하나가 발견된다. 좀개미취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백두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남한에서는 영월, 태백산 등지에서만 발견되는 북방계 희귀식물이다. 8월10일경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한 포기에 여러 개의 머리 모양 꽃이 달려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대천 계곡을 따라서 분포, 훼손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하루 빨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이 종에 대한 보전의 중요성을 깨달아 보전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밖에도 월정사 부근의 길가와 숲속에는 매화노루발, 은대난초, 여우오줌, 왕고들빼기 등이 자라고 있다.

▲ 할미밀망 - 중부 이남의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나무로 꽃은 6~8월에 핀다. 꽃이 3개씩 모여 달리며, 사위질빵에 비해서 줄기가 굵다.
월정사에서 오대천을 따라 상원사쪽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는 신갈나무, 소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까치박달, 난티잎개암나무, 피나무, 고로쇠나무 등의 나무가 관찰되며, 풀로는 환삼덩굴, 쇠별꽃, 모시물통이, 이삭여뀌, 가시여뀌, 동의나물, 눈괴불주머니, 눈개승마, 짚신나물, 물봉선, 기름나물, 애기괭이눈, 바늘꽃, 초롱꽃, 진득찰, 고려엉겅퀴, 두메고들빼기, 각시둥굴레 등이 나타난다.

한편, 오대천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차량 출입이 가능한 이곳에는 애기수영, 소리쟁이, 흰명아주, 붉은토끼풀, 토끼풀, 달맞이꽃, 돼지풀, 미국가막사리, 지느러미엉겅퀴, 개망초, 뚱딴지, 원추천인국, 겹삼잎국화, 서양민들레 등의 귀화식물도 침입해 자라고 있다.

▲ 산외 - 중부 이북의 높은 산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박과의 한해살이풀로 덩굴지어 자라며, 꽃은 8~9월에 핀다. 두 갈래로 갈라진 덩굴손이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
오대산의 전나무숲은 상원사 부근에서도 한 번 더 발달한다. 이곳의 전나무숲에는 숲 밑에 귀한 풀꽃도 많이 자라고 있다. 참개별꽃,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매발톱꽃, 점현호색, 태백제비꽃, 당개지치, 산외, 노랑무늬붓꽃, 연령초, 관중 등이 전나무숲 속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대산의 숲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나무숲을 이루는 전나무는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침엽수로서, 남한에서는 지리산, 소백산, 태백산, 설악산 등 높은 산에서만 자생한다. 설악산의 경우에는 해발 800m쯤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해발 1,300m쯤 되어 분비나무로 대치될 때까지 생육한다. 백양사 등 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 사찰 주변에서도 전나무 노거수를 만날 수 있는데, 자연적인 분포는 아닌 듯하고, 사찰을 통해 오래 전에 전래된 듯하다.

▲ 흰송이 풀 - 전국의 높은 산에 자라는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핀다. 홍자색 꽃이 피는 송이풀과는 달리 흰 꽃이 피므로 품종으로 구분한다.
오대산의 경우, 월정사나 상원사는 해발고도가 700~900m나 되므로, 자연적인 분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월정사 주변의 전나무숲은 이곳에 전나무만이 순군락을 이뤄 자라는 것으로 보아 천연림은 아닌 듯하다. 이 전나무 숲은 자연적인 것에 인위적인 관리가 보태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오대산 전체로 보면 전나무숲은 너른 품세, 그것도 바위가 거의 없는 대표적인 육산(肉山)인 오대산이 가꿔내는 숲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전나무 군락뿐만 아니라 굴참나무 군락, 피나무 군락, 고로쇠나무 군락, 당단풍나무 군락, 사스래나무 군락, 서어나무 군락 등 여러 큰키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참나무의 일종인 신갈나무가 오대산 전역에 걸쳐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특히 고지대 능선에는 어김없이 이 숲이 발달해 있다. 비로봉의 주변의 능선과 사면, 진고개에서 노인봉 일대의 해발 1,000~1,200m에는 신갈나무가 순군락에 가깝게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또한 저지대와 바위지대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명개리 계곡, 월정사, 호령봉 등 해발 500~1,000m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높낮이 없는 고산능선에 아름드리 활엽수가 숲 이뤄

▲ 냉초 - 추풍령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6~8월에 핀다. 잎이 마주나는 꼬리풀 종류들과는 달리 3~9장씩 돌려나므로 구분된다.
주봉인 비로봉 일대에는 점현호색, 왜현호색 등이 큰 무리를 지어 자라며, 이밖에도 요강나물, 누른종덩굴, 꿩의바람꽃, 양지꽃, 산꼬리풀, 냉초, 털쥐손이 등이 자라고 있다. 비로봉에서 백두대간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주능선에 자라는 식물들은 오대산의 특징적인 식물상을 대변해 준다. 비로봉에서 북대사나 두로령까지 가는 동안에 오대산의 귀한 식물 대다수를 관찰할 수 있고, 능선에는 키 작은 떨기나무숲이 발달하는가 하면, 오대산이 자랑하는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낙엽활엽수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비로봉에서 상왕봉까지의 능선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떨기나무숲과 큰키나무로 된 낙엽활엽수림이 함께 발달한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쪽으로 주능선을 따라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1,539m)에 이르는 능선에는 떨기나무숲이 이어진다. 해발 1,500m가 넘는 지역으로 이곳에서는 신갈나무도 떨기나무처럼 키를 낮춘 채 자라고 있으며, 민둥인가목, 산개벚지나무, 백당나무, 매발톱나무, 진달래, 만병초, 시닥나무, 꽃개회나무, 나래회나무 등의 떨기나무가 숲을 이뤄 자라고 있다. 고산성 침엽수인 주목도 여러 그루 발견된다.

▲ 투구꽃 - 전국의 산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8~10월에 핀다. 투구처럼 보이는 부분은 꽃받침이며, 작은 꽃잎 2장이 꽃받침 속에 들어 있다.
이곳의 숲 밑에 자라고 있는 풀로는 투구꽃, 요강나물, 홀아비바람꽃, 숙은노루오줌, 광릉갈퀴, 광대수염, 둥근이질풀, 냉초, 흰송이풀, 소경불알, 두메고들빼기, 연령초, 감자난초 등이 있다.

떨기나무숲이 끝나도 능선은 고도 1,400m 이상을 유지하며 상왕봉까지 이어진다. 높낮이가 거의 없어 콧노래 부르면서 걷기에 좋은 능선이 1.5km쯤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능선은 평탄할 뿐만 아니라 아름드리 활엽수들이 짙은 숲을 만들고 있어 어디 딴 세상에라도 든 듯한 느낌을 준다. 한여름에 산행을 하더라도 시원한 그늘 속을 걸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숲길이 이어진다.

▲ 개벚지나무 -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 계곡 근처에 드물게 자라는 장미과의 큰키나무로 꽃은 5~6월에 핀다. 상원사 부근의 오대천 상류에 몇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숲은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면서도 피나무와 주목 노거수들이 가끔씩 나타나고, 층층나무, 당단풍나무, 돌배나무, 산벚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자라고 있다. 숲의 중간층에는 철쭉나무, 꽃개회나무, 백당나무, 회나무, 물참대 등이 자라고 있다. 숲 바닥에는 흰진교, 투구꽃, 촛대승마, 터리풀, 노루오줌, 모싯대, 금강초롱꽃, 서덜취, 당분취, 연령초, 감자난초 등이 생육하고 있다.

상왕봉에서는 노랑무늬붓꽃이 발견된다. 환경부가 법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보호식물로서, 오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기록되었다. 이 식물의 라틴어 학명에는 ‘오대산에 자라는’ 또는 ‘오대산에서 발견된’이라는 뜻을 가진 ‘odeasanensis’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오대산에서는 이곳 외에도 몇몇 곳에서 더 발견되며, 주왕산, 소백산, 태백산을 비롯한 중부 이북의 여러 산에 분포한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로 알려졌지만, 최근 중국 만주 일대에서도 발견되어 중국 식물도감에도 기록된 바 있다.

▲ 새며느리밥풀 - 지리산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현삼과의 한해살이풀로 꽃은 8~9월에 핀다. 꽃이 필 때 주변의 꽃싸개잎도 꽃과 더불어 빨갛게 변한다.
상왕봉에서 446번 지방도가 뚫려 있는 두로령까지의 능선에도 짙은 숲이 발달해 있다. 특히 이곳은 녹지자연도(綠地自然度) 9등급에 해당하는 숲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녹지자연도 9등급은 극상림에 해당하는 자연림으로, 남한의 산지 중에는 설악산 등 몇몇 곳에만 볼 수 있는 녹지자연도 최상 등급이다.

극상림은 식물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하는 천이단계에서 맨 마지막에 볼 수 있는 숲의 형태로서 먹이그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외부 교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태계다. 또한, 생산량과 소비량이 비슷한 단계이고, 생물다양성의 매우 높은 특징을 보인다. 보전적인 측면에서 국가적으로 보아 절대적으로 보전해야 할 보전순위 1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오대산의 이 극상림에는 사스래나무, 신갈나무, 피나무 등의 활엽수와 전나무, 잣나무, 분비나무, 주목 등의 침엽수가 섞여 자라고 있다.

숲의 중간층에는 함박꽃나무, 매발톱나무, 백당나무, 철쭉나무, 붉은병꽃나무, 물참대, 까치밥나무 등이 생육하고 있다. 풀로는 눈개승마, 벌깨덩굴, 눈빛승마, 산꿩의다리, 동자꽃, 꿩의다리아재비, 투구꽃, 미나리냉이, 네일갈퀴나물, 터리풀, 노랑제비꽃, 광대수염, 금마타리, 금강초롱꽃, 단풍취, 삿갓나물, 연령초, 금강애기나리, 풀솜대, 두루미꽃, 박새, 은방울꽃 등이 자란다. 이들 나무와 풀 가운데 많은 것들이 고산식물 또는 북방계 식물로서 오대산이 높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육이 가능한 것들이다.


톱바위취로 오인하는 특산식물 구실바위취

두로령에서 446번 지방도를 타고 상원사쪽으로 내려가면서 오대천 최상부 사면의 식물상을 엿볼 수 있다. 두로령에서 북대사 부근까지 가는 길가에서 금강초롱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눈빛승마, 흰진교, 투구꽃, 눈개승마, 도깨비부채, 선괭이눈, 참당귀, 물레나물, 송이풀, 큰용담 등을 길가에서 볼 수 있다.

▲ 금강초롱꽃 -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 특산식물로 꽃은 8~10월에 핀다. 오대산에서는 북대사 부근에서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북대사에서 상원사까지에는 갯버들, 난티나무, 쉬땅나무, 다릅나무, 풀싸리, 고추나무, 복장나무 등의 활엽수가 자라고 있으며, 병조희풀, 물양지꽃, 구실바위취, 노랑물봉선, 개시호, 참좁쌀풀, 등골나물 등의 풀을 관찰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구실바위취는 학자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이다. 높은 산의 계곡가나 습한 사면에 드물게 자라는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잎은 바위떡풀의 둥근 잎을 닮았다. 학자들조차 백두산 등지에 자라는 톱바위취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에서 종종 톱바위취로 잘못 기록되는 식물이다.

▲ 광릉갈퀴 - 한반도와 일본에 자라는 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6~8월에 핀다. 오대산 숲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어린 줄기와 잎을 나물로 먹는다.
톱바위취는 남한에 분포하지 않는 식물이며, 구실바위취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서 백두대간의 소백산, 응복산, 점봉산, 한북정맥의 광덕산, 복주산, 강원도의 방태산 등지에서 생육을 확인한 바 있다. 필자도 10여 년 전 응복산에서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으로 발표할 때, 톱바위취로 잘못 인식한 적이 있다. 1996년 발간한 필자의 저서 <꽃산행>에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구실바위취를 톱바위취로 오인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를 종합할 때, 오대산에서 보호해야 할 식물로는 속새, 등칡, 누른종덩굴, 할미밀망, 세잎종덩굴,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세잎승마, 구실바위취, 도깨비부채, 개벚지나무, 산개벚지나무, 민둥인가목, 생열귀나무, 청시닥나무, 산겨릅나무, 부게꽃나무, 금강제비꽃, 금마타리, 산외, 회목나무, 만병초, 꽃개회나무, 소경불알, 금강초롱꽃, 노랑무늬붓꽃, 좀개미취, 금강애기나리, 말나리, 산마늘, 연령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밖에도 환경부의 멸종위기종인 한계령풀이 생육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에 대한 정밀조사와 함께 보전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 인가목조팝나무 - 태백 이북에 드물게 자라는 장미과의 떨기나무로 꽃은 5~6월에 핀다. 높이 1m쯤이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어린 가지에 뚜렷한 능선이 있다.
오대산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은 최근 조사에서 468종류로 조사되었다. 학술적 증거로 쓰이는 확증표본이 모두 확보된 것만을 센 것이나 일단은 믿을 만한 숫자다. 하지만, 조사기간, 인력, 예산 등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이므로 이것이 오대산 식물의 전모를 밝혔다고 할 수는 없다. 오대산의 몇몇 골짜기들은 아직도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 채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곳의 조사를 포함하여 오대산 식물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루어지면 800~1,000종류의 식물이 오대산 식물목록에 올려질 것으로 추정된다. 관리공단, 식물분류학자들, 아마추어 식물연구가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글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koreanplant.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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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문화

자국 영토임을 각인시키려는 의지의 표현
한국 오대산신앙의 본거지는 신라의 호국사찰

▲ 오대산 사고. 오대산의 위치가 조선시대의 영토로는 오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설치했다.

산은 자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된 산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산이란 사람이 일정하게 개념화하여 이름붙인 대상으로서의 자연경관이지만, 여기에 시간, 곧 역사가 더해지고 문화집단이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 독특한 의미와 기능이 형성된 문화경관이기도 하다.

백두산을 생각해 보자. 백두산은 우리에게 있어 자연경관을 넘어서 겨레문화와 정신사의 아이콘(icon)이자 상징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어떠한 집단적인 의미체계가 형성되어있다. 따라서 백두산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사회적 의미가 집적된 문화경관인 것이다.

문화경관에는 그 경관을 만든 문화집단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되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산의 이름을 비롯하여 상징성, 의미, 문화적 건축물, 사회 집단의 생활공간 등으로 지명 혹은 문헌을 통해 인지할 수 있거나 가시적인 경관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며, 역으로 이러한 매개를 통해 문화경관으로서 산에 투영된 집단적 이데올로기의 문화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산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시대와 지역 환경이 바뀜에 따라 사람과 새로이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새로 의미가 구성되어 인식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백두대간이라는 것도 사회적으로 의미를 공유하는, 다시 말해 문화적 의미가 구성된 산맥의 인식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이라는 개념 속에 반영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는 국토의 중추이자 근간에 대한 인식, 땅을 유기체의 시스템으로 인식하는 풍수적 사유, 조선시기의 지리정보 등 수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두대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실 백두산도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지도에 본격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당시부터 집권 왕조에 의해서 지리적으로 중시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비로소 지리적 인식의 확장과 더불어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맥 체계가 정립된 것은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서 국가안보와 지방통치의 필요상 국토지리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 새로이 우리에게 각인된 백두대간이라는 주제의 사회적 담론은 국토에서 백두대간이라는 산맥체계가 지니는 환경생태적 중요성과 일방적 서구문화의 수용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전통적 가치의 각성 등이 결합된 것이다.
일제시기 일본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한반도의 서구적 산맥체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백두대간이라는 전통적 인식과 가치의 도전을 강력하게 받게 되었고, 백두대간의 사회적 인식은 이미 상당한 고지를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리적 개념은 사회적으로 해당 시기를 주도하는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역사가 바뀜에 따라 또 도전되는 변증법적인 경로를 겪게 된다.


신라 호국사찰로 등장한 중대 사자암

오대산도 문화경관이라는 시선의 맥락에서 조명할 수 있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문화적 상징적 배경은 무엇이며, 오대산이 자연경관에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문화경관으로서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의미체계를 형성한 것은 언제부터이고, 그 내용과 배경은 무엇일까? 오대산이라는 문화경관의 형성을 주도한 세력집단은 어떤 계층인가?

오대산이라는 이름을 처음 가지게 되고, 이 영역에 사찰을 필두로 하는 문화적 경관이 형성된 것은 불교집단의 이데올로기와 불교적 문화적 요소가 투영된 결과다. 그리고 문화경관이 새롭게 형성되고 기능이 변경되는 데는 문화집단 간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세력 관계가 배경이 되고 있는데, 문화경관에 또한 신라의 정치사회적인 세력관계가 공간적으로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권근이 쓴 오대산 사자암 중창기라는 글에는 사찰의 정치적이고 사회적 기능이 잘 나타나 있다. 곧 사자암이라는 절은 왕실집단이 원찰로 설치하여 호국 기능을 담당하였던 사찰이라는 것이다.

▲ 오대산 북대(미륵암).

‘강릉부의 오대산은 빼어난 경치가 옛적부터 드러났다기에, 원찰(願刹)을 설치하여 승과(勝果)를 심으려 한 지 오래였다. 지난해 여름에 늙은 중 운설악(雲雪岳)이 이 산에서 와서 고하기를 '산의 중대(中臺)에 사자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국가를 보비(補裨)하던 사찰입니다.’

문화경관으로서의 오대산은 지리적 역사적 특성에 따라 그 기능이 새로 더해지기도 하였다. 신라시기에 오대산이라는 이름을 얻고 국토의 요충지이자 승경(勝景)으로 선택되어 처음 불교적 문화경관이 입지하였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그 위치가 조선시대의 영토로는 오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사고(史庫)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오대산은 흙산이면서 천 바위, 만 구렁이 겹겹으로 막혀져 있다. 가장 위에는 다섯 축대가 있어 경치가 훌륭하고 축대마다 암자 하나씩이 있다. 그 중 한 곳에는 부처의 사리를 갈무리하였다. 한무외(韓無畏)가 여기에서 선도(仙道)를 깨치고 신선이 되었는데 연단(練丹)할 복지(福地)를 꼽으면서 이 산이 제일이다 하였다. 예로부터 병란이 침입하지 않았으므로 국가에서는 산 아래 월정사 옆에다가 사고(史庫)를 지어 실록을 갈무리하고 관원을 두어서 지키게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오대산이 불교의 문화적인 속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선덕여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서 적고 있듯이 신라의 자장율사 이래로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살고 있는 성지로 알려져 왔으며, 오대신앙의 본산으로 일컬어졌다.

오대산의 지리적 위치는 당시 신라 영토와 국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당시 호국불교의 관념에 비추어 볼 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사찰을 배치하여 불보살의 호국적 보위를 상징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동아시아적인 문화영역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같은 이름은 중국과 일본에도 있다. 다시 말해 중국에 있는 오대산이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공간적으로 확산된 지리적인 속성도 띠고 있다. ‘한중일 오대산신앙의 연구’(박노준)에 의하면(이하 관련 내용은 연구를 요약한 것임), 원래 오대산신앙은 불교의 화엄경에 의거하고 있지만, 불교와 산악숭배 관념이 결합된 것으로, 중국 태원의 오대산, 한국의 오대산, 일본 쿄토 부근의 애탕산(愛宕山)이 오대산에 비정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 보현사.

오대산이라는 이름에 접두사로 붙은 오(五)라는 이름에는 동아시아의 가치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오대 혹은 오봉(五峰)의 신성한 산 관념은 인도의 숫타니파타에서도 드러나며, 문수사리반열반경에서는 히마바트(Himavat)의 신령스러운 곳에 다섯 봉우리로 둘러싸인 호수가 있다는 내용도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 오(五)라는 숫자는 만물을 아우르는 상징성을 내포한 성수(成數)였기 때문에 세계와 자연경관을 오의 의미체계로 읽거나 해석하였는데, 세계관의 운행질서로서 오행과 방위의 오방(五方)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국토의 명산 역시 오악으로 지정하였는데, 중국의 오악은 동 태산(산동성), 서 화산(섬서성), 남 형산(호남성), 북 항산(산서성), 중 숭산(하남성)이고, 신라의 오악은 동 토함산, 서 계룡산, 남 지리산, 북 태백산, 중 팔공산이었으며, 일본(헤이안시대)의 오악은 조일봉, 대취봉, 고웅산, 용상산, 하마장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중국 태원의 오대산이나 한국의 오대산이 화엄경에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청량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을까? 화엄경에는 ‘동북쪽에 보살이 머무는  청량산이 있다. 과거 이래로 보살이 거주하였는데 현재 문수보살이 만 명의 보살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여기에 청량산은 실제의 산이라기보다는 불교의 경전문학에서 가공된 산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오대산은 중국 중원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기후적 조건이 청량하며 산수 경관이 신비스럽고 탁월하다는 점도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오대산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다가 중국의 오대산과 닮아서 붙인 이름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익숙한 환경이나 이상향을 닮은 곳에 입지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역사적으로 사찰의 입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이라는 이름은 기사굴산의 역어로서 인도의 산과 닮아서 이름 지었고 사찰이 입지하였던 것이다. 고승전에 의하면, 중국의 경우에도 인도의 승려인 구나발마(求那跋摩·377-431)가 시흥에 머물렀을 때 호시산이 기사굴산과 비슷하여 영취산이라고 이름하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 보현사 석물
중국의 오대산은 산서성 성도인 태원시에서 동북쪽으로 230㎞에 위치해 있고 둘레가 250㎞, 5개 산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동대 망해봉, 남대 면수봉, 서대 계월봉, 북대 엽두봉, 중대 취암봉이라 한다. 중국에서 오대산은 불교 4대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며, 나머지 세 곳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성의 구화산이 있다.

한국의 오대산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듯이,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의 태화지라는 못가에서 7일 동안 기도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는데, 그 때 문수보살이 하는 말이 “너희 나라 동북방 명주 경계에는 오대산이 있는데 만 명의 문수보살이 항상 그 곳에 있으니 참배하라”고 하여 귀국 후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오대산은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 422m), 상왕봉(1, 491m), 호령봉(1, 561m) 등 다섯 봉우리가 지정되었다. 오대의 옛 이름에 대해서 권근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강원도 경계에 큰 산이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함께 우뚝하다. 크고 작기가 비슷하면서 고리처럼 벌렸는데, 세상에서는 오대산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의 가운데 것은 지로(地爐), 동쪽은 만월(滿月), 남쪽은 기린(麒麟), 서쪽은 장령(長嶺)이라 하며, 북쪽은 상왕(象王)이라 한다.’(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

최원석 경상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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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제21구간 / 두로봉] 르포

하늘을 대신한 숲의 바다에 빠져들다
진고개~동대산~두로봉~신배령~만월봉~응복산~약수산~구룡령 구간

숲의 바다에 몸을 싣는다. 서핑 보드 같은 건 필요 없다. 오로지 두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노 저어 나갈 뿐이다. 숲의 바다를 헤쳐 가는 서퍼는 스스로 파도가 되어야 한다. 포말도 스스로 땀방울로 만들어야 한다. 그 파도는, 모래톱에서 스러지지 않는다. 파랑의 정점에서 햇살로 몸을 씻고, 아주 행복한 얼굴로 산마루 위에 스러진다. 비로소 파도는, 들꽃과 함께 먼산바라기를 한다.

이번 구간,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는 말 그대로 숲의 바다다. 더없이 건강한 숲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더욱이, 이번 구간의 가장 낮은 등성마루인 진고개(970m)에서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만 오르면, 산행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1,000m 아래로 내려설 일이 없다. 산행 들머리인 진고개에서 동대산(1,433.5m)까지는 실거리 1.6km로 1시간 넘게 올라야 하지만, 이후부터는 산 주름이 느슨하다. 두로봉을 오를 때나 마지막 약수산 기슭만 가파를 뿐, 대부분 순하게 오르내린다. 이번 구간은 실제 거리(23.5Km)와 도상거리(22Km)의 차이도 거의 없다.

사실 이번 구간을 시작하기 전에는 심리적 부담이 컸다. 태풍 에위니아가 남긴 상처가 너무 짙은데다, 이틀이나 염천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옅은 구름이 한여름 햇살을 무디게 해 주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이 그늘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해발 1,000m 이상 고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낮에도 걷지만 않으면 거의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복병은 있었다. 일찍 서울을 떠났지만 휴가철의 길 사정은 시간을 무력화시켰다.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돌고 돌아 진고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계획대로 오전 10시에 출발했더라면 두로봉쯤에서 땀을 식히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모든 계획을 없던 일로 했다. 되는 대로 산에 몸을 맡기기로 마음을 고쳐먹자 오히려 느긋해졌다.

▲ 하늘과 맞닿은 숲의 바다. 진고개에서 동대산으로 30m만 오르면, 한번도 1,000m 아래로 떨어지는 일 없이 구룡령까지 갈 수 있다. 그것도 대부분 하늘을 대신한 숲 사이로.

만 생명의 자궁 숲

진고개에서 동대산까지는 코방아를 찧을 듯한 된비알이다. 1.6km를 걷는 동안 고도를 460m 정도 올린다. 우습게 볼 높이가 아니다. 우리나라 산의 평균 해발고도(440m)를 웃돈다.

산으로 들자마자 무성한 다래 넝쿨이 온몸을 감싼다. 다소곳이 졸고 있는 달맞이꽃 옆에서 쑥부쟁이가 보랏빛으로 웃고 있다. 10분쯤 지나자 싸리나무와 조릿대 위로 참나무가 하늘을 대신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다. 거의 2시간(평균 1시간)만에 동대산에 오른다. 질경이가 가득한 산마루엔 동자꽃, 나리꽃, 당귀꽃이 한창이다. 그 위로 고추잠자리가 군무를 펼치고 있다.

두로봉을 향한다. 숲은 원시의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터널을 이룬 참나무 숲은 초록 햇살을 땅 위에 드리운다. 만약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오대산의 숲은 건강하다. 참나무를 중심으로 극상림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3대가 함께 사는 집 같다.

▲ 두로봉을 내려서서 가던 길 멈추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생로병사와 무관하다.
오대산 숲의 건강성은 태풍 에위니아가 증명해 주었다. 아주 작은 흔적을 제외하고는 사태도 거의 없다. 숲이 우리에게 내려준 축복이다. 숲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불경을 무릅쓰자면, 1년 동안 약 35조원이라고 한다. 산소를 공급하고(1ha에 연간 12톤), 물을 저장하고(소양댐 10개), 공기를 정화(활엽수림 1ha가 걸러내는 먼지의 양은 연간 68톤)한다. 또한 흙을 보호한다. 뿌리는 물론이거니와 삭정이와 낙엽까지 힘을 합쳐 흙을 감싸안는다. 숲의 토사유출 방지능력은 황무지의 227배에 이른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온도를 조절해 주고, 동물을 거두어 먹이고, 소음을 흡수해 주고, 인간의 심성까지 정화해 준다. 숲은 만생명의 자궁이다.

<침묵의 봄>이라는 책으로 환경오염의 위험을 경고한 레이첼 카슨(1907-1964)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나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아이의 새벽 단잠을 깨워서라도 바깥으로 나가 보자.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특별히 일찍 깨어나기로 약속한 날,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에 안기는 날, 그런 날의 경험을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를 통해서 내 힘과 정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땅의 시인 정현종은 이렇게 노래했다.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올리는
봄 풀잎
하늘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기둥

숲 예찬이 길었다. 고백하건대,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사에서다.


멧돼지는 최고의 포식자이자 대적할 자 없는 맹수

차돌배기를 지나 편안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앞서 가던 사진기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한 30m 정도 앞에서 멧돼지 두 마리가 지나가고 있다. 대간 종주를 하면서 수없이 멧돼지의 흔적은 봤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하는 걸 보면서, 내가 만약 산길에서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고 보니 놀라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크다. 그러나 그건 잠시다. 이후로 거의 끊임없이 파헤친 흔적을 보자 간담이 서늘해진다. 가급적이면 일행과 떨어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인다.

▲ 초록의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대간 길. 사람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간 종주를 했지만 멧돼지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은 없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사람을 공격한 경우는 멧돼지에게 닥친 최악의 생존 상태에서 빚어진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그 근거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다반사이면서도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멧돼지는 청각과 후각이 대단히 발달했기 때문에 인기척을 느끼면 먼저 피한다고 한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의심이 많고, 겁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멧돼지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해 보자면, 오대산이야말로 멧돼지의 천국이다. 대식가인 멧돼지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다. 천적이 없다보니 전국 어디고 멧돼지가 흔하지만, 대간 등성마루에서 이 정도로 많은 흔적을 본 적은 없다. 사실상 우리나라 동물 생태계에서 멧돼지는 최고의 포식자이자―인간을 제외하고는―대적할 자가 없는 맹수다.

▲ 순도 100%의 햇빛 아래로.

멧돼지의 생존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못 먹는 것이 거의 없다. 식탐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절제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성장기 이후로 평생 홀로 지내는 수컷의 금욕은 수도사에 가깝다. 근친 교배를 막기 위해 생후 2년 정도가 지나면 무리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한겨울(12~3월)이 짝짓기 기간인데, 이 기간 내에도 암컷의 발정 기간은 3일에 불과하다. 힘없는 수컷은 그 기간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열악한 계절이 짝짓기 기간인 것도 생존전략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때에 임신을 하고 봄에 새끼를 기르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동물 생태계에서 멧돼지가 번성하는 주된 이유다. 그런데 천적이 없다는 점이 멧돼지에게는 불행이다. 개체 수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오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환경이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오대산 숲의 건강성은 또한 멧돼지가 보증하고 있다.

두로봉을 목표로 삼았지만 신선목이에 이르자 어둠살이 돋기 시작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오히려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든다. 신선목이 왼쪽(서쪽) 기슭에 샘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면 물이 있는 이곳에서 잘 것인지, 물을 지고 갈 것인지를 놓고 갈등했을 테니까. 신선목이는 두로봉을 2km 정도 앞둔 곳으로, 동대산에서 이곳까지 긴 내리막을 이루다가 두로봉(1421.9m)으로 솟구친다. 

▲ 만월봉 전 조망처에서.

취재팀의 좌장인 김종현 형은 물 냄새를 맡는 데는 낙타에 버금간다. 어느 새 약간 허물어진 샘을 복구해서 물을 떠 온다. 여름 산행에서 물은, 겨울 살림에서 김장보다 지위가 높다. 양껏 행복해진 우리는 맹렬히 먹고 마신다. 이제 눈만 감으면 아침일 것이다.

두로봉에 도착한 시각은 아직 공무원 출근시간 전이다. 기분 좋은 시작이지만 조망은 좋지 않다. 사방을 참나무와 드문드문 자작나무가 에워싸고 있는데다 옅은 구름이 깔려있다.

두로봉은 대간과 오대산 주능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두로봉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오대산의 주능선은 상왕봉(1,491m), 비로봉(1,563.4m·오대산 정상), 호령봉을 일으켜 세우는데, 이 줄기는 남서로 계속 이어져 계방산, 태기산을 지나 팔당까지 뻗어나가면서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을 이룬다(요즘 이 산줄기를 ‘한강기맥’이라고 부름).

대간과 오대산 주능선의 관계를 간략히 정리하면 동대산에서부터 두로봉, 두로봉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호령봉까지 신선골과 상원사 계곡을 감싸안는다. 그리고 상원사 적멸보궁 아래 중대(사자암)를 중심으로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가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오대 즉 ‘동대 만월산, 남대 기린산, 서대 장령산, 북대 상왕산, 중대 풍로산을 현재의 봉우리를 대응시켜 보면, 동대는 동대산이고, 북대는 상왕산일 것 같은데, 나머지는 어떤 봉우리인지 알 길이 없다.

▲ 불에 타 죽은 나무와 새로 돋는 숲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룡령 직전 내리막길.

두로봉은 곧장 북쪽을 향하며 허리를 낮추어 고개 하나를 열어준다. 신배령이다. 옛날,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이어주던 고개였을 것인데, 지금은 고개로서의 구실이 없다. 신배령이라는 이름은 돌배가 많아서 비롯됐다는데, 실제로 주위에 돌배나무가 많다. 트레일에 다래만한 돌배가 흔하게 눈에 띈다. 현재 신배령에는 근사한 나무벤치가 놓여 있고, 서쪽 기슭에 샘이 있어 쉬어가기에 아주 좋다.

신배령에서 1시간 정도 곧장 나아가는 대간 마루는 1210.1m봉에서 서쪽으로 몸을 틀며 만월봉(1,280.9m) 일으켜 세운다. 다시 내려섰다 크게 솟구치면 응복산(1,491m)이다. 양양 남대천의 상류이자 청정하기로 이름 높은 법수치 계곡이 바로 이 산 동쪽에서 시작한다. 북쪽으로 미천골도 이 산에서 시작된다. 응복산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보는 눈맛도 근사하다. 오대산은 물론 동대산과 황병산까지 한눈에 안긴다.

▲ 구룡령으로 내려서는 급전직하의 내리막길에서. 구룡령으로 오르는 56번 지방도가 아스라하다.
응복산에서부터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북서쪽으로 휘돌다가 불끈 서면 약수산(1,306.2m)이다. 동쪽으로 불바라기약수, 남쪽으로 구룡약수와 명계약수, 서쪽으로 삼봉약수, 북서쪽으로 갈천약수가 있어서 그 이름이 비롯된 것 같다.

약수산에서 구룡령(1,013m)까지는 급전직하하는 내리막이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서부터는 등성마루를 걸을 수 없다. 철망으로 막혀 있는데, 이 길의 본래 주인인 식물과 동물을 위한 생태이동통로가 구룡령 위를 지난다. 휴게소로 문을 열었다가 삼림전시관으로 이름을 바꾼 휴게소는 동물들의 이동에 방해가 된다 하여 문을 닫았다. 진전된 생태의식은 기껍지만, 시원한 음료수 한 잔 할 수 없는 점은 솔직히 아쉽다.

구실을 잃어버린 휴게소 주차장에 앉아 노점에서 산 자두를 베어 먹으며 하늘을 본다. 땀만 흘리지 않고, 배만 고프지 않고, 다리만 아프지 않았다면 신선이 부럽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본다. 23.5km에 이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길은, 또 나를 유혹한다.


# 백두대간 고샅의 명소

구룡령 주변에는 이름난 약수가 많다. 그 중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고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며 경관이 수려한 곳에 있는 약수터를 소개한다.

불바라기약수
강원도 양양군 미천골에 있는 약수다. 미천골의 벼랑에서 흘러나오며, 물맛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라 하여 불바리기로 불린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의 임도를 이용하면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다.

삼봉약수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다. 구룡령에서 홍천쪽으로 가다가 명계교에서 삼봉 자연휴양림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북쪽으로 가칠봉, 서쪽으로 응봉산, 남쪽으로 사삼봉 사이에 있다 하여 삼봉약수로 불린다. 장기간 요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장도 있다.

갈천약수
강원도 홍천군 서면 갈천리에 있다. 구룡령에서 양양쪽으로 내려서면 된다. 주변에 휴양시설이 많다.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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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류산인
[백두대간대장정 제15구간] 태백산 - 풍수

산이 많아 龍도 많은 금수강산
한강·낙동강·오십천 물이 갈리는 삼수령(三水嶺)

▲ 낙동강의 천삼백 리 물길의 발원지인 황지.

풍수지리에서는 산줄기가 살아있는 용처럼 생겨야 된다고 하여 ‘산룡(山龍)’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흐르는 물도 마치 용처럼 굽이치며 흘러야 제격이라고 하여 ‘수룡(水龍)’이라는 풍수용어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 풍수지리계에서는 수룡(水龍)이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에 대해 생소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산이 많고 수백 리의 평야지대가 없으므로 수룡풍수이론을 적용할 지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수룡에 대한 풍수지리적 개념이 부족하다.

산에도 용이 있고 물에도 용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는 열차를 타고 몇 시간을 지나면서 보아도 산봉우리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가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존의 산룡법 풍수지리를 평지에서는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수룡법 이론을 활용해야 한다.

수룡풍수법에 관한 이론은 청나라 초기의 명사인 장대홍(蔣大鴻) 선생이 남긴 <비전수룡경(秘傳水龍經)>을 통해 이론이 정립됐다. 장대홍 선생은 평생 풍수지리를 연구한 당대 최고 풍수가였으며, 특히 당대(唐代)의 양균송 선생의 풍수서적을 모아 주석한 <지리변정(地理辨正)>이란 명저를 비롯해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현공풍수에 관한 많은 서적을 남겨 현공풍수의 근대 종사(宗師)로 잘 알려져 있다.

장대홍 선생은 출생지는 상해이며, 상해 근교에서 풍수 연구로 일평생을 보냈는데, 상해 근교는 평지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룡에 관해 연구하게 됐으며, 그 연구 결과물이 바로 <비전수룡경>이다.

풍수고서에 이르기를 ‘수주재록산인정(水主財祿山人丁)’이라 하여 본래 물은 재록(財祿)을 의미하고 산은 인정(人丁)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풍수지리 초보자라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의 검룡수.

그렇다면 산이 없는 지역에서는 재물은 있을지라도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오해할 소지가 많은데, 중국 풍수고전 중 유명한 <청낭서(靑囊序)>에 이르기를 ‘부귀빈천재수신(富貴貧賤在水神)’이라 하여 ‘부귀와 빈천이 물에 달려 있다’고 하여 산이 없는 지역일지라도 물이 좋으면 물이 산의 의미인 인정(人丁)의 역할도 한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형 상 수룡법 이론을 적용할 지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이론은 거의 쓸모가 없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홍콩의 풍수지리가들은 도심지에서는 도로를 물로 간주해 본다는 사실을 이용해 즉 수룡법 이론을 도심지에서 양택 이론에 적용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물이란 묘지나 주택을 기준으로 낮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강물이나 연못의 물은 당연히 물이지만 도로나 골목길도 차량이나 사람이 통행하면 동상(動象)이 되므로 물로 간주하여 본다. 다만 도로는 실제적인 물이 아니기 때문에 ‘가수(假水)’라 부르며, 밤낮없이 흐르는 실제 물에 비해 역량이 적다.  


태백시내에 있다.

‘龍’ 자로 된 지명은 풍수와 관련된 지명

우리나라는 지명 중에는 풍수지리적 영향과 산이 많기 때문에 용(龍) 자가 들어간 지명이 아주 많이 있다. 예들 들면, 가룡(駕龍·전남 신안군 압해면), 가룡(佳龍·충남 천안시 성환읍), 갈룡(葛龍·전북 진안군 정천면), 개룡(開龍·전남 광양시 보강면), 거룡(巨龍·전북 부안군 백산면), 거룡(巨龍·전북 정읍시 북면), 계룡(鷄龍·전북 김제시 금산면), 고룡(古龍·경남 하동군 진교면), 고모룡(顧母龍·충남 홍성군 홍성읍), 곡룡(曲龍·경남 고성군 고성읍), 골룡(骨龍·경남 창령군 영산면), 광룡(狂龍·경북 성주군 가천면), 구룡(九龍·충남 당진군 당진읍 외 다수), 국룡(國龍·광주시 광산구 송학동), 군마룡(軍馬龍·전북 익산시 여산면), 금룡(金龍·경남 밀양시 상남면), 기룡(己龍, 起龍, 騎龍·전남 나주군 노안면), 기룡(奇龍·경남 양산군 장안면), 기룡(起龍·전북 김제시 금산면), 뇌룡(磊龍·경남 함양군 함양읍), 대룡(臺龍·경남 밀양시 단장면), 대룡(大龍·경남 양산군 장안면), 덕룡(德龍·경북 김천시 어모면), 도룡(道龍·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도룡(倒龍·전남 순천시 송광면), 도룡(渡龍·충북 진천군 문백면), 등룡(登龍·전북 김제시 봉남면), 마룡(馬龍·경남 양산시 동면), 망룡(望龍·전남 순천시 월등면), 명룡(鳴龍·충남 공주시 이인면), 목룡(木龍·경남 함양군 휴천면), 무룡(舞龍·전남 순천시 해룡면), 문룡(文龍·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미룡(尾龍·경남 삼천포시 노룡동), 미룡(美龍·경북 영천시 고경면), 반룡(蟠龍·경북 의성군 다인면), 반룡(盤龍·전북 고창군 부안면 외 다수), 백룡(白龍·전남 나주시 문평면), 복룡(伏龍·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 다수), 복룡(福龍·충북 청원군 남이면), 비룡(飛龍·충남 연기군 금남면) 등이 있다.

삼룡(三龍·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룡(上龍·경북 고령군 성산면), 생룡(生龍·광주시 북구 생룡동), 세룡(細龍·전북 순창군 인계면), 소룡(巢龍·경남 거창군 신원면), 소룡(沼龍·경북 김천시 감천면), 소룡(少龍·전북 군산시 소룡동), 송룡(松龍·전남 강진군 옴천면), 수룡(水龍·경북 경주시 건천읍), 승룡(昇龍·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룡(新龍·경남 김해시 진영읍), 쌍룡(雙龍·경북 문경군 농암면), 야룡(野龍·전북 부안군 행안면), 양룡(陽龍·충남 부여군 장암면), 어룡(魚龍·충남 천안시 성환읍 외 다수), 영룡(永龍·전남 나주시 문평면), 오룡(五龍·경남 남해군 창선면 외 다수), 옥룡(玉龍·전남 고흥군 금산면), 와룡(臥龍·전북 정읍시 소성면 외 다수), 외룡(外龍·경남 창녕군 대합면), 운룡(雲龍·전북 정읍시 고부면), 월룡(月龍·충남 연기군 남면), 자룡(自龍·충남 연기군 서면), 자룡(紫龍·전북 고창군 상하면), 장룡(長龍·전북 고창군 상하면), 주룡(舟龍·광주시 북구 운정동), 중룡(中龍·전북 익산시 여산면), 천룡(天龍·경북 경주시 내남면), 청룡(靑龍·경북 예천군 하리면 외 다수), 칠룡(七龍·강원 영월군 하동면), 평룡(平龍·전남 무안군 현경면), 하룡(下龍·경남 의령군 용덕면), 해룡(海龍·전북 고창군 신림면), 화룡(化龍·전북 김제시 용지면), 황룡(黃龍·경북 의성군 점곡면), 회룡(回龍·전남 고흥군 도양읍 외 다수), 횡룡(橫龍·전북 정읍시 감곡면), 흥룡(興龍·경남 하동군 하동읍) 등이 있다.

이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지명 중에는 풍수와 관련된 지명이 아주 많지만, 수룡(水龍)과 관련된 지명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강의 발원지는 금대산 아래 검룡소

▲ 백두대간의 삼수령 안내판.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검룡소(儉龍沼)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금대봉(金臺峰·1,418m) 산자락의 여러 계곡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던 물이 다시 솟은 곳인데, 바로 이곳이 한강 514km의 발원지이다.

과거에는 오대산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대천의 우통수와 창죽천의 검룡소의 합수지점인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두 지점을 실측한 결과 창죽천의 검룡소가 오대천의 우통수보다 약 32km나 더 길다는 것이 밝혀졌다.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 2천 톤 가량 용출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발원한 물은 바로 아래의 20여m의 급경사진 물길을 따라 용트림하며 내려가는 모습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수룡의 모습이다.

검룡소의 계곡물은 사계절 9℃ 정도로 겨울에도 주위 암반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어 신비한 모습을 더해주고 있다. 용이 살고 있다고 해서 검룡소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는데, 풍수지리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기 때문에 강룡(强龍)에 해당된다.

금강의 발원지는 뜬봉샘(飛鳳泉),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儉龍沼), 낙동강의 발원지는 황지(黃池)라고 하는데, 이렇게 같은 발원지인데도 규모에 따라 각기 명칭이 다르다. 샘[천(泉)]은 물이 솟는 규모가 작고, 소(沼)는 웅덩이의 물이 깊고, 지(池)는 저수지처럼 물의 양이 많은 곳을 지칭한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정선군 임계면의 임계천, 정선읍의 조양강, 영월군의 동강, 그리고 남한강에 이어 한강이 되고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덕항산(德項山·1,070m)과 천의봉(天儀峰·1,303m. 일명 매봉산) 사이에 있는 삼수령(三水嶺·일명 큰피재·해발 920m)은 낙동강, 한강, 오십천 세 물의 발원지가 되어 그렇게 이름이 붙었는데,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태백시에 있는 황지(黃池)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고, 오십천의 발원지인 소재한이 있다.

▲ 검룡소 안내석.
삼수령에서 주변의 산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강산이다. 우리나라 풍수고서에 이르기를 ‘아동 산고수려 고왈고려 조일선명 고왈조선 차내문명지상야(我東 山高水麗 故曰高麗 朝日鮮明 故曰朝鮮 此乃文明之象也·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수려하여 ‘고려’라고 하였고, 아침 해가 곱고 밝아 ‘조선’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명의 상이다)‘라고 했는데, 풍수지리를 논외로 하더라도 역시 우리나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금수강산임에 틀림이 없는 고려이며 조선이며 한국이다.

한편 이 지역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는 태백시내에 있는 황지는 523km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는 땅이다. 금대봉 남쪽 기슭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태백시 화전동 용수골의 용소에서 솟아나와 낙동강의 시발점에 되므로 용소가 실질적으로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소에서 약 6km 정도 내려와 시내 중심에 황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이 낙동강 발원지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곳이다. 황부자의 전설로 유명한 이 연못은 상지(上池), 중지(中池), 하지(下池)  3개의 연못으로 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천황(天潢)이라 부르던 곳이다.

천황은 백두산 천지처럼 ‘첫 물웅덩이’라는 의미다. 황지는 우리나라의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고, 각종 고문헌에도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상징적인 의미로서 낙동강의 발원지다.

글 최명우 대한현공풍수지리학회 연구소장 http://cafe.daum.net/gusrhdvnd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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